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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조윤석] 무조건 헬멧을 쓰라고요?

입력 2018-07-11 04:10:01


많은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논란이 많은 법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9월 28일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잠시 가까운 거리에 일보러 갈 경우에도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면 범법자가 된다. 자전거도로, 차도는 물론 인도(보도)에서도 이 규정은 적용된다. 아직 처벌조항은 없지만 행정안전부는 “헬멧 착용문화가 정착된 후에는 처벌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법은 주말에 쫙 달라붙는 화사한 옷을 입고 산악자전거나 경주용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은 헬멧을 쓰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잘 쓰고 다닌다. 이 법은 자전거가 일상에서 교통수단으로 꼭 필요한 학생, 가정주부, 지역의 자영업 종사자, 노인 등 교통약자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자전거 헬멧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마다 헬멧 착용을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

행안부는 2012년부터 5년간 자전거 사고로 인한 응급환자 중 머리 부상자 비율이 38.4%로 가장 높다는 점과 헬멧을 착용할 경우 머리 부상 정도가 8∼17% 줄어든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실험 결과를 언급하면서 헬멧이 중상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고 이 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설명에 동의할 수 없다.

경찰청의 지난 10년간(2005∼2014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중에서 자전거와 관련된 사고의 비율은 7.8%였다. 자전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6%였고 사고의 원인은 차량 운전자의 전방주시 태만이 70.4%로 가장 높았다. 다시 말하자면 자전거 사고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운전자가 한눈팔다가 차로 들이받은 사고다. 헬멧은 사고가 났을 때야 소용이 있겠지만 차에 받히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니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헬멧을 씌울 것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자들이 운전하면서 한눈팔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먼저가 돼야 한다. 헬멧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사고의 책임을 애꿎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인구 10만명 당 4.1명으로, OECD 평균(1.4명)의 약 3배다. 200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1위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매우 험하게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료다. 내가 주목하는 건 주행 중인 차량 간 사고보다도 차와 보행자 사이에 발생하는 교통사고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전거 이용자뿐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헬멧 착용을 의무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전거 이용자 헬멧 착용 의무화는 탁상행정의 전형이자 직무유기다.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헬멧을 쓰기 전까지 나는 자전거를 탈 때마다 헬멧을 써야 하는 헬멧 의무화법에 반대한다.

진심으로 자전거 사고를 줄이고자 한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차와 차 간 안전거리를 법으로 정해놓듯이 자전거와 차 간 안전거리를 정해놓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시내에서 자동차가 자전거를 추월할 땐 1m, 외곽 지역에선 1.5m를 떨어지도록 1958년 법으로 정해놓았다. 우리나라는 법에 안전거리를 확보하라고만 되어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안전거리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 차와 자전거 간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논란이 발생하게 된다. 이 기준을 빨리 정하는 것이 헬멧을 강제로 씌우는 것보다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는 5㎞ 이내의 거리에서는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가까운 은행이나 마트, 우체국 등을 갈 때마다 헬멧을 반드시 써야 한다면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전거 타는 게 번거로운 일이 돼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선택하는 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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