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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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빨간 모자의 아이들

입력 2018-06-29 04:10:02


동생의 세 아이 중 늦둥이 막내를 제외한 두 아이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내게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온종일 재잘대며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두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우울할 새 없이 즐거웠다. 세 아이의 육아에 지친 올케도 그 틈에 한숨 돌릴 수 있으니 모두에게 두루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매주 아이들과 만나왔는데 지난 두어 달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웬만하면 아이들의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여러 개의 마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급한 일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난 지난주말, 오랜만에 방문한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었다. 특히 큰아이는 유난히 길고 곧은 다리와 또래 아이들보다 큰 키 때문인지, 이제 겨우 아홉 살인데도 얼핏 사춘기 소녀 같아 보였다.

문득, 일전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통지해주는 우편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통지서 속의 사람은 평범한 인상과 체격의 삼십 대 남자였는데 미성년자를 상대로 특수강간을 저질렀으며, 부모님과 동생 가족이 함께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수십 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통지서를 본 지 채 1년도 되기 전이니 그새 그 남자가 이사했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 남자 말고도 위험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낯 가리는 법 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람을 좋아해 덥석덥석 안거나 안기길 잘하는 아이의 다정한 성향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이틀 내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주의를 시키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아이들은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내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그런 사실 자체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이 나이를 먹고도 나는 여전히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데, 안고 있으면 아직도 아기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고 두려워졌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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