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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경원] 김영권이 서 있는 곳

입력 2018-06-23 04:05:01




축구부 전지훈련 일정이 다가오면 전주공고의 중앙수비수 김영권은 말수가 줄었다. 김영권의 아버지는 김영권이 중학교 3학년일 때 보증을 잘못 섰다. 강원길 전주공고 감독이 김영권의 회비를 몰래 대신 냈다. 전지훈련 명단을 본 김영권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김영권은 최종 수비 진영에 섰다. 등 뒤에는 골키퍼뿐, 무너지면 실점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한 세상이 무서웠을까, 거칠게 달려드는 공격수가 무서웠을까. 나는 어느 쪽도 잘 모르겠다. 다만 김영권이 축구장 안팎에서 모두 훌륭히 이겨냈다는 건 알겠다. 강 감독은 “영권이가 월드컵에 나가는 모습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영권은 지는 걸 못 참았다. 예측하고 여유 있게 플레이하면서도, 안 풀리면 상대의 다리를 걷어찰 줄도 알았다. 국내 수비수 가운데서는 드물게 왼발로 강한 킥을 했다. 전주공고는 수세에서 김영권을 맨 앞줄 공격수로 내세웠다.

김영권은 훈련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고교 선수의 악바리 승부근성은 내구성 문제로 돌아왔다. 대학 시절 은사인 정진혁 전주대 감독은 “솔직히 처음부터 선택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습경기 때 보면 김영권의 양 무릎은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한 경기 뛰면 며칠 쉬어야 하는 선수 같았다.

강 감독의 권유로 김영권을 면담하면서, 정 감독은 “네가 이겨내는지 딱 6개월만 지켜보겠다”고 짐짓 차갑게 말했다. 가정 형편, 부상 이력, 어렵다는 중앙수비수…. 김영권은 모든 환경이 역경이었다. 김영권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입학도 안 한 김영권을 제주도 동계훈련에 데려갔다. 버스 타이어를 끌고 중문해수욕장 모래밭을 달리게 했다. 김영권이 숨을 몰아쉬면 정 감독은 옆에 붙어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일부러 욕지거리를 했다. 김영권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고 한다. 물끄러미 보던 정 감독은 그의 대학 입학 등록금을 대신 냈다.

2008년 춘계대학축구연맹전 8강전에서 전주대는 호남대 골문이 가까운 지점에 프리킥을 얻었다. 정 감독은 김영권을 가리켰다. 1학년더러 차라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영권은 더 어려운 걸 해냈다. 왼발을 떠난 공이 골문 구석에 꽂혔다. 아름다운 궤적이었다고 한다.

그 경기장에 조동현 당시 U-19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있었던 건 김영권의 행운이다. 김영권은 청소년대표가 됐고, 조 감독의 후임은 중앙수비수 출신 홍명보 감독이었다. 김영권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일본 J리그 도쿄FC와 계약했다. 계약금을 받자마자 정 감독을 찾아와 절하며 등록금을 갚았다. 김영권이 그때 1억원을 쾌척해 전주대 축구부는 낡은 버스를 갈아치웠다. 버스 타이어를 간신히 끌던 소년이 버스를 끌고 올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경기장에 와 응원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주는데, 영권이는….” 김영권이 결혼식 주례를 부탁할 때, 정 감독은 혼자였던 제자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고 한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자리지만, 국가대표 중앙수비수의 임무에 실수가 없진 않았다. 김영권은 지난해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전을 비긴 뒤 “관중 소음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고 인터뷰를 했다. 사과를 거듭한 뒤에도 김영권의 가족은 한동안 인터넷을 멀리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의 어머니는 요즘도 병원을 찾는다.

지난 18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김영권은 온몸을 내던졌다. 함께 내던진 건 가슴앓이한 과거였을지도 모른다. 패전 속에서도 김영권의 태클이 회자됐다. 정 감독은 “영권이가 그런 ‘육탄 방어’를 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김영권의 아버지는 “영권이가 인천공항을 나갈 때 ‘죽기 살기로 할 게요’라고 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타향에서 트럭 운전으로 가족의 삶을 최종 수비하던 그는 지금 서울 강서 YGFC의 대표다. 아들의 이름으로 축구팀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 경기들이 남아 있다는 이유다.

내일도 김영권은 최종 수비 진영에 선다. 등 뒤에는 골키퍼뿐, 무너지면 실점이다. 죽기 살기로 막아라 소리치는 세상이 무서울까, 막아야 할 공격수가 무서울까. 나는 어느 쪽도 잘 모르겠다. 다만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터의 종료 휘슬을 기다리며 인생을 최종 수비하는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우리의 축구는 늘 죽기 살기여야 하는 걸까. 그저 살기로는 어려운 걸까.

이경원 스포츠레저부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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