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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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이지현] 현실과 꿈이 다를 때

입력 2018-06-23 04:10:01


요즘 5060세대를 ‘리본(re-born) 세대’로 부른다. 잊고 산 ‘나’를 찾아 다시 태어나는 세대라는 의미이다.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취업난 속 자녀들을 챙기느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세대’로 여겨졌던 50, 60대들이 변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5060세대 1070명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물었다. 가족을 먼저 챙기던 부모 세대와 달리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가장 소중한 존재로 ‘나 자신’을 꼽았다.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가 뒤를 이었다.

5060세대의 삶의 중심이 가족보다는 자신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회사와 가정에 얽매였던 데서 벗어나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재취업이나 창업을 원하고, 버킷리스트(평생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은 낀 세대가 아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깬 세대’로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그럴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리본 세대는 ‘갑과 을’의 전쟁에서 을이다. 정년이 연장됐으나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하고 평생 열정을 쏟았던 직장에서 물러나야 하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히말라야의 노새처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5060세대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는 ‘더블 케어(double care)’ 상태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성인 자녀를 두고 있으며 양가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살아 있는 국내 만 50∼69세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더블 케어’ 상황인 응답자가 34.5%(691가구)로 가장 많았다.

현실과 이상이 다를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인생의 환승역’에 서 있다면 기다리는 기차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아야 한다. 5060세대의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하려면 이 시기엔 삶의 속도를 늦추고 미처 돌보지 못했던 것을 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직장일 하느라, 집안일 하느라, 아이들을 돌보느라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려 보자. 지금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싶었는지를 발견하면 그것을 할 용기가 난다. 선택한 일을 위해 자신의 100%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될 때 결단할 용기가 생긴다.

앞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어쩌면 더 긴 시간을 걸어가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과는 좀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동안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달려왔다면 이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지금까지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삶을 계속할 살 것인가’란 질문에 대답을 찾는 시기다. 떠밀려 살지 않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 시기엔 젊은 시절 추구해오던 물질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생긴다. 삶의 방식을 ‘성취 지향적’에서 ‘관계 지향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빈 공간은 더 커지고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C S 루이스는 이런 욕망은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경험 속에는 ‘신적 불만족(divine dissatisfaction)’이 자리 잡으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먼저 절대자와 깊은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얻어지는 기쁨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마치 빛나는 보름달도 태양열이 없으면 하늘에 떠 있는 돌덩이에 불과하듯,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코드가 뽑힌 컴퓨터에 불과하다.

또 사람들과의 만남, 예술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에서 오는 사랑의 의미를 느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노동의 시간(봉사)을 가져야 하고, 자녀 중심의 삶에서 부부 중심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밖으로 쏟던 에너지를 내부 세계로 쏟아 넣고 궁극적인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할 때이다.

이지현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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