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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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라동철] 세기의 정상회담

입력 2018-06-14 05:05:04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정상회담들이 있다. 세기(100년)를 대표할 정도의 중요한 회담이라는 의미에서 세기의 담판으로도 불리는 역사적인 만남들이다. 1972년 중국에서 열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국가주석·저우언라이 총리와의 첫 미·중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이 회담 이후 중국은 서방세계를 향해 쳤던 ‘죽의 장막’을 열었고 79년 미·중 수교로 이어졌다. 89년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개최된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의 미·소 정상회담은 냉전의 종식을 선언한 회담이다. 두 정상은 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세계는 냉전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의 만남은 20년 후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회담이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회동은 1961년 국교 단절 후 이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해 가는 데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 첫 정상회담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만남이었다.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성사된 최고지도자들의 만남은 남북 교류·협력 확대로 이어졌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세기의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었다. 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만남은 미·소 간 대결을 격화시켰다. 2000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만남도 실패로 끝났다.

12일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각국의 언론들이 앞다퉈 대서특필한 세기적 만남이었다.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듯 ‘과정의 시작’인 만큼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예고된 북·미 간 후속 실무협상의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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