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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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명희] 이름값

입력 2018-06-07 05:05:04


큰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내 이름은 종종 신문 지면에 오르내린다. 네이버 검색창에 이름 석 자를 넣으면 인물정보에 등록된 유명인만 19명이다. 배구선수 국악인 아나운서 검사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이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2000년대 초반 삼성그룹을 출입하던 시절에는 이름 덕을 봤다. CEO나 임원들은 ‘이건희 회장님 여동생’이라며 수십 명 기자 중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고종사촌인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 부인 이름도 내 이름과 같다. 덕분에 2000년대 초 최 회장이 주최한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표 전 사장 옆자리에 앉아 내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박근혜정부 때는 역사 왜곡으로 파문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연일 신문을 도배했다.

지난달 초 타사 후배는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출금까지 당하시고. 왜 그러셨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으나 곧 의미를 알아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출국금지를 당한 날이다. 요즘은 모임에 가면 ‘갑질로 유명한 사람입니다’라고 내 소개를 한다.

엊그제 법원이 상습폭행 혐의를 받는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논란이 뜨겁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법관들이 갑의 편이 돼서 을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다”며 영장 기각을 규탄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이씨를 구속하라는 청원이 수십 건 올라왔다. 변호인단은 이씨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는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재벌들은 감옥에 가게 되면 없던 병이 잘도 생긴다. 피해자 11명 중 5명은 합의서를 냈다. 당초 10명이 처벌을 원했는데 마음을 바꾼 것이다. 유일하게 영상 증거가 확보된 호텔 공사장 폭행 피해자와 운전 중 폭행을 당한 수행기사 등이 포함됐다. 일부는 억대 합의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니 해묵은 ‘유전무죄’ 타령이 또 나오는 것 아닌가. 이름값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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