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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3전 3패보다 두려운 것

입력 2018-06-05 05:10:02


“3전 3패 되지 않겠어요?” 한국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예상 성적을 논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비참한 전망만큼이나 축구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좀처럼 뜨지 않는 월드컵 열기다.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의 개막이 10일도 안 남았음에도 관심도는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대표팀 평가전 정도를 빼면 스포츠 뉴스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는 종목은 단연 야구다. 북·미 정상회담(12일), 지방선거(13일)라는 정치·외교 빅이슈에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항상 월드컵 시즌과 시기가 겹쳤기에 정치 이벤트가 월드컵 인기의 발목을 잡는다고만 보기 어렵다.

결국 대표팀 자체에 대한 관심 저하가 근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대표팀은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조차 힘겹게 통과해 실망을 안겼다. 그 후에도 경기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럽 원정 평가전은 4전 전패였다. 지난 1일 전주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 경기에서도 완패했다. 출정식에서 패하면 월드컵 본선 성적이 좋지 않다는 징크스가 회자됐다. 약체로서 최적의 전술을 가다듬어야 할 때 ‘실험’ 운운하며 패한 대표팀에 신뢰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문제는 대표팀의 위기가 이번 월드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는 공교롭게도 신태용 대표팀 감독이 일깨워줬다. 신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다 감독이 돼 죽여라 살려라 한다” “일본·중국만 가도 관중석이 80% 찬다. 우리는 15∼20%만 차는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등으로 비판했다.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 축구의 발전이 K리그 경기장을 찾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응원을 통해서도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K리그 인기 하락에 책임이 없지 않은 축구인이 남 탓하듯 말하는 것도 거슬린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K리그 흥행 부진은 한국 축구 토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올해 K리그의 경기당 평균 관중은 5500여명. 지난해 6502명(문체부 통계)보다 1000명가량 줄었다. 2008년(1만1642명)의 반토막 수준이다. K리그는 관중 감소→투자 부진→인기 하락→관중 감소의 악순환에 수년째 빠져 있다. 설령 이번 월드컵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한다 한들 한국 축구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위기의 목소리는 반복될 것이다. 197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축구가 대체 누구의 가슴속에 각인된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수비 축구의 폐해를 지적한 말이지만 뚜렷한 비전 없이 땜질식 처방과 요행을 통한 결과에 기대온 한국 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더 좋아하지만 K리그에 흠뻑 빠진 때가 한 번 있었다. 바로 박주영(FC서울)이 프로에 데뷔한 2005년이었다. 청소년 축구 스타의 프로 진출에 그의 출전 경기를 학수고대한 기억이 난다. 박주영은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재정 여건이 어렵다면 구단마다 스타 마케팅에 나서거나 화제의 선수를 부각하는 홍보 전략이 절실하다. 남자농구 문경은 서울 SK 감독은 올 시즌 우승 후 예전 농구대잔치 시절 인기에 못 미친다는 모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선수들도 미디어 노출을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팬들에게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기일수록 팬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처럼 거액을 들여 스페인 리그 슈퍼스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영입하지 못할 바에야 내부의 될성부른 떡잎을 발굴하는 게 낫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남아공월드컵)과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저변에는 박주영과 쌍용(기성용·이청용)이라는 K리그 출신의 활약이 있었다. 감동과 스토리가 있으면 팬들은 늘어나고, 이는 한국 축구 도약의 발판이 된다. 3전 3패의 전망보다 두려운 것은 추락하는 한국 축구를 쳐다만 보는 것이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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