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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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소리의 천국

입력 2018-06-04 05:05:02


1980년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가 있었다. 바로 콜라병 따는 소리였다. 제법 잘 흉내 내는 아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콜라 거품 소리와 컵에 콜라는 따르는 소리를 만들 줄 아는 아이도 있었다. 당시 TV 광고의 콜라병 따는 소리를 사람이 만들었고, 그 사람이 콜라 회사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돌았다. 후에 그 사람이 김벌래라는 음향감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치약 광고의 뽀드득 소리, 만화 ‘로봇 태권V’에 나오는 우주선 소리,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의 배경음으로 사용한 시그널 등 많은 소리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에 고인이 됐다는 소식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떠도는 소리들이 한 곳으로 모여 청각기관을 흔들리게 했다.

몇 년 전 출판사를 하는 후배의 기획으로 김벌래 선생의 책을 만들려고 할 때 인터뷰어를 맡기로 했었다. 문학의 한 방향을 언어의 음악성에 두고 있고, 소리에 대한 관심으로 가끔 사운드 아티스트들과 협업 공연들을 하고 있기도 해서 선생과의 만남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무산됐다. 고인이 만든 목적이 있는 의도적이고 경이로운 소리와 내가 관심을 두는 즉흥적이고 잡음에 가까운 소리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소리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듣는 능력을 키우고 청각을 발달시키게 만든다. 주변의 모든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되어 우리를 둘러싼 배경이 불필요한 노이즈만이 아닌, 자연과 인공의 소리로 가득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쉴 새 없는 소리의 파동 속에서 침묵을 꿈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침묵도 소리라는 말은 철학적 사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인 윤제림은 김벌래 선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세상 만물을 음향으로 다스리던 사람입니다. 그가 만든 소리는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였습니다.’ 고인이 어딘가 있다면 그곳은 소리의 천국일 것이다. 오래전 친구들이 소리 놀이를 할 때 나는 다소 짓궂은 태도로 당시 유행하던 진해거담제 광고 카피를 따라 이렇게 말했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김벌래 선생은 이 제품 광고의 종소리도 만들었다고 한다.

김태용 (소설가·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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