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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하게 휘돌아가는 강줄기의 황홀경

입력 2018-05-31 05:05:02
이른 아침 일출 무렵 전남 함평군 학교면 속금산에서 내려다 본 영산강과 나주시 동강면의 들판 모습. 물안개가 잔잔히 깔린 강물에 아침 해의 붉은빛이 수를 놓으며 비단결 같은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부드럽게 휘감아도는 영산강에 안긴 동강면 운산리가 섬처럼 보이고, 아직 수확을 끝내지 못한 누런 보리밭과 모내기를 위한 무논이 뒤섞인 들판은 색다른 경치를 내놓는다.
 
동강면 옥정리 ‘느러지전망대’에서 본 영산강 물돌이.
 
전남도산림환경연구소 진입로의 메타세쿼이아길.


영산강은 남도의 젖줄이다. 전남 담양 용추계곡에서 발원해 광주와 나주, 무안 등을 두루 적신 뒤 목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길이는 136㎞. 한강(515㎞), 낙동강(522㎞) 등에 견주면 보잘것없지만 교통로로서 비중은 뒤지지 않았다. 휘고 굽으며 흐르는 동안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풀어놓는다. 특히 나주(羅州)에서 만나는 경치는 이름 그대로 비단 같다.

영산강 풍경 가운데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곳이 있다. 사포나루 인근 속금산이다. 속금산의 행정구역은 함평이지만 이곳에서 보는 풍광의 대부분은 나주에 속한다.

사포나루는 나주의 동강면 운산리와 함평 학교면 곡창리 사포를 잇는 영산강 본류의 나루터다. 함평천이 영산강 본류로 유입하는 곳이다. 주변에 넓은 백사장이 발달돼 있고, 강폭이 넓어 호수와 같다 해 ‘사호진(沙湖津)’이라고 칭했다. 정약용은 영산강을 ‘사호강’이라 했다. 1980년대까지 운영됐으나 1992년 동강대교가 놓이면서 나루 기능을 잃었다.

곡창리에 전라도 수군의 최고 지휘부 대굴포(大堀浦)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대굴포에 있고, 대선 8척 중선 16척 군사 1895명 뱃사공 21명을 거느린다’고 기록돼 있다. 원래 수영은 전북 옥구에 위치해 있었는데, 1408년(태종 8년) 12월 전라도 수군절제사의 요청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왔다. 1432년(세종 14년) 목포로 이전될 때까지 약 23년간 조선시대 서남해안 일대를 관장하던 수군 지휘부로 존속했다.

‘수통막’(배들의 통제소), ‘동막’(동쪽의 초소), ‘빈정’(외래객을 맞는 정자), ‘양창, 창골, 창등’(군량미 창고), ‘집결배미’(마을 앞 들), ‘군사등’(마을 뒤 언덕), ‘마연·마봉’ ‘옥천’ 등 당시의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배들의 정박지였을 포구는 토사로 덮여 논이 됐고, 전함이 다니던 뱃길을 가로질러 포장도로가 개설됐다. 쓰러진 작은 안내판만이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20여분 속금산을 오르면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보면 동강면 운산리를 부드럽게 휘감아도는 영산강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으로 둘러싸인 운산리가 섬처럼 보인다.

이른 아침 붉은 기운이 강물에 비치고, 강물에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며 아침을 일깨운다. ‘비단결’ 같은 풍광이다. 멀리 들판에는 아직 수확을 끝내지 못한 누런 보리밭과 모내기를 위한 무논이 색다른 경치를 내놓는다.

오른쪽에 동강대교가 보인다. 그 아래로 흘러가면 ‘영산강 2경’(느러지)을 지난다. 느러지는 밀가루 반죽을 부은 것처럼 강으로 흘러내린 산자락 지형에 붙여진 이름이다. 물살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강물이 크게 휘돌며 조롱박 모양의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동강면 옥정리에 ‘느러지전망대’가 우뚝 솟아 있다. 야트막한 비룡산 정상에 있는 15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이다. 느러지 일대를 U자로 굽이치는 영산강 물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왼쪽 물길을 따라 오르면 ‘영산강 3경’(나주황포돛배)을 만날 수 있고 더 올라가면 ‘나주영상 테마파크’를 지나 ‘죽산보’에 이른다. 죽산보를 지나쳐 더 오르면 홍어의 거리인 ‘영산포’에 도달한다.

1970년대 말 강줄기 끝자락에 영산강 하굿둑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뱃길은 목포항에서 강물을 따라 73㎞나 거슬러 올라갔다. 수많은 나루터가 자리잡았다. 영산포도 그중 하나다. 흑산도 옆 영산도 주민들이 고려 조정의 공도정책에 따라 이주해 살면서 홍어 산지로 이름을 알렸다.

영산포는 일제강점기 무렵 번성했다. 비옥한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내가던 곳이었다. 당시 지어진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黑住猪太郞)의 집과 동양척식회사 문서고 등 일본풍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S라인’을 그리며 유장하게 흘러가는 영산강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포인트가 또 있다. 신곡리 봉곡마을 인근 정자 금강정에서 샛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사방이 트인 강 언덕이 나온다.

영산강 지류 가운데 지석강이 있다. 전남 화순 능주에서 나주 남평까지 4㎞ 구간은 ‘드들강’이라 불린다.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처녀 ‘드들이’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 몸을 바쳐 마을을 구했다는 전설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노래의 원천이 된 곳이다.

드들강에서 쉬어가기 좋은 곳은 드들강 솔밭유원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강변 초지 위에 소나무가 우뚝하다. 솔숲 그늘에서 부드러운 강물을 바라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영산강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이 시기에 푸르름으로 눈호강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남도산림환경연구소 진입로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숲길보다 짧지만 폭이 좁고 안온해 멋진 정취를 풍긴다. 양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원뿔형 나무가 도열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연구소는 일대의 숲을 수목원처럼 꾸며놓았다.

인근에는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이 있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와 과거시험을 같이 치른 동문’이란 이유로 화를 입은 풍산 홍씨 일가가 들어와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인위적으로 전통마을을 복원하지 않고, 슬레이트를 얹은 시골집과 전통 한옥 고택이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작은 연못을 앞에 둔 양벽정과 마을 공동정자인 영호정이 쉼을 나누어준다. 고택을 두르고 있는 돌담도 정겹다. 마을과 고택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 여행메모

대굴포에서 속금산 20분 오르면 전망 바위
영산포 홍어·구진포 장어… 먹을거리 풍성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영산강 물돌이를 보려면 내비게이션에서 ‘대굴포전라수군처치사영터’ 또는 ‘사포나루’를 검색해 찾아가면 된다. 동강교에서 가깝지만 동강교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거나 강원도 영월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무안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함평군 학교사거리에서 우회전해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동강교 직전에 좌회전하면 바로 사포나루가 나오고 700m쯤 더 가면 도착한다. 이곳에 주차한 뒤 왼쪽 좁은 길로 들어서 속금산 이정표를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조망이 확 트이는 넓은 바위가 나온다.

나주읍에 나주목사 내아(061-332-6565)가 있다. 내아란 관사의 안채 격인 건물이다. 전남도문화재자료 132호인데 일반인들에게 숙박 장소로 공개하고 있다. 나주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어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나주의 먹을거리로 영산포의 홍어회가 꼽힌다. 옛 영산포구 일대에 ‘홍어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구진포에는 장어집이 즐비하다. 1950년대 중반 일본에서 살다 귀국한 이가 처음 장어구이집을 연 뒤 대거 들어섰다.

나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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