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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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질병과 무관한 것들

입력 2018-05-30 05:05:03


재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가장 큰 마음고생을 했다가 그래도 한동안 괜찮았던 K씨가 다시 걱정에 빠졌다. K씨는 조현병 15년째이며 나는 그 전투 중에 4년을 함께했는데 1년이면 360일은 약을 먹는 정성이 놀라운 분이다. 매일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는 것은 하나의 수행(修行)이며, 몇 달만 지나도 나태해지기 쉬운데 말이다. 조현병을 앓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실력으로 점점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데다 동호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K씨의 경과가 좋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조현병이라니, K씨는 정신질환에 대해 편견이 커질까 봐 걱정돼 출퇴근길에 계속 관련 기사만 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조현병이라고 무조건 위험한 것이 아니며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에 0.04%만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등 오해를 풀 수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질병 자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전보다 줄었다. 그래도 조현병의 낙인이 불안한 K씨와 해결책을 의논했다. 나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전문가들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범죄율이 높거나, 일을 할 수 없거나, 성격 문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아쉽게도 K씨는 고개를 저었다. 교육과 홍보를 해봤자 귀 기울이지 않는 닫힌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K씨는 언론에서 차라리 자세히 보도하기를 바랐다.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 말고 ‘조현병으로 진단받았는데도 가족들이 정신과에 편견을 가져 계속 치료받지 못했다’ 또는 ‘조현병인데도 약을 자의로 끊은 지 1년째다’ 차라리 이렇게 상세하게 보도했으면 좋겠다고. 맞는 말이라며 함께 웃었다. K씨는 조현병이라고 감형을 해준다면 질병과 싸우며 열심히 살아가며 의사결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했다. 법을 지키고, 남을 해치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며, 열심히 치료받는 환우 및 가족들이 자신과 무관한 다른 개인의 잘못 또는 때로는 질병을 핑계 삼는 이들로 인해 용기 잃지 않기를 빈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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