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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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통일각

입력 2018-05-29 05:10:02


1985년 7월 26일. 안기부장 특보였던 박철언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판문점 북측 지역을 향했다. 판문각에서 북서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그를 맞이한 이는 70년대 유엔 대표부 대표를 지낸 통일전선부 부부장 한시해였다. 두 사람은 앞서 같은 달 11일 판문점 남측 지역평화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정부가 88년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가동한 이른바 ‘88라인’의 시작이다. 남측은 정상회담을 위한 최고위급 접촉을, 북측은 특사 교환을 제안했다. 88라인은 42차례의 접촉에도 정상회담의 문은 열지 못했지만, 분단 이후 첫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박철언이 2차 비밀접촉 때 찾은 곳은 통일각이다. 연면적 약 1500㎡(460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이다. 북한이 85년 8월 회담 시설로 준공했다. 통일각이라는 이름은 당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각 앞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 전날 쓴 친필 서명이 새겨진 친필비가 세워져 있다. 98년 6월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통일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을 때 트럭들이 서 있던 곳 옆으로 보이던 건물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2012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으나 이유 모를 화재가 발생해 이듬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화재 당시 북한은 소방차 8대를 보유하고 있던 남측 개성공단 소방파출소에 화재 진압 요청을 하기도 했다.

통일각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의전, 의제, 공동합의문도 없는 회담이었다. 환영받을 만한 파격이다. 27일에는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북·미 외교 당국자가 판문점 그것도 북측 지역에서 접촉한 것은 이례적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북·미 회담의 이탈을 막고 남북 셔틀외교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각을 포함한 판문점은 남북이 총을 겨눈 대립과 대결의 장소이자 대화와 교류의 공간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름 없는 주막으로 시작돼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켜본 곳이다. 이제는 지난 65년 불신과 단절이 남북 및 북·미 대화를 통해 해소되는 역사의 장이 되길 바란다. 아무런 제약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통일각을 구경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김영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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