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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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서윤경] 부르고뉴 와인과 대진침대

입력 2018-05-28 05:05:03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집을 나갔던 큰아들이 10년 만에 돌아오면서 벌어진 일들을 그리고 있다. 공동 명의로 상속받은 농장을 두고 벌이는 삼 남매의 갈등을 프랑스식 유머코드를 가미해 풀어간다.

영화의 큰 줄기는 가족이지만 갈등의 근원은 포도와 포도주다. 아버지는 남매에게 세계적인 포도주를 생산하는 부르고뉴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와인을 만들도록 어릴 적부터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지금 큰아들은 호주에서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막내아들은 실패 확률이 적은 와인을 만들어 돈을 버는 장인어른과 함께 일하고 있다. 여동생만 농장을 지키고 있다. 놀랍게도 갈등의 과정을 거치며 큰아들은 농약을 뿌리는 이웃 농장과 싸우고 막내아들은 품질보다 쉽고 편한 와인을 만들려는 장인의 방식이 틀리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농장을 팔지 않기로 결정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지켜낸 건 농장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배운 장인정신이었다.

여기 와인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가 지나가도 끄떡없는 침대 매트리스다. 1990년대 초반 코끼리가 침대 매트리스를 밟고 가는 이 TV 광고는 숱한 화제를 만들었다. 이 회사의 로고도 스프링 위에 얌전히 서 있는 덩치 큰 코끼리였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최근 ‘라돈침대’ 사태를 일으킨 대진침대다. 국내 최초의 침대전문 업체인 이 회사는 국내 침대 시장을 양분하며 한때 침대 명가로 꼽혔다. 2000년대 들어 매출이 급락했지만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대진침대를 선택한 데는 기술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만 있었다. 직업윤리를 더한 장인정신은 없었다.

이번 라돈침대 사고로 사람들이 분노한 것도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 나온 것보다 대처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접수 전화는 불통이고 회사 규모가 작아 사람이 없다는 말만 했다. 이후 섣부른 조사 발표로 비난의 화살이 정부 쪽으로 향하자 아예 그 뒤에 숨었다.

해결에 나선 건 정부다. 라돈침대 회수를 위해 운송과 안전관리에 나서겠다고 했다.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정부가 세금을 들여 대신하는 꼴이 됐다. 이처럼 윤리를 버린 기업들의 행동에 분노한 일들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도 해당 기업들은 정부 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서윤경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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