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지금 난리 났다. 트럼프가 판을 엎었어.” 24일 밤 11시쯤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속보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25일 오전 7시 넘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위임 신속 담화를 내놓기까지 지난밤은 길었다.
전 세계가 편지 속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분석하고 김 위원장의 대응을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인간으로서 오늘 아침은 예측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아찔하고 어지럽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1962년 쿠바 미사일 문제로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운운하던 때에 견주면 지나친 과장일까. 혼돈의 아침 문득 ‘존 F 케네디의 13일’로 역간된 책 ‘The week the world stood still(세계가 멈췄던 일주일)’이 떠올랐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녹음한 일명 ‘케네디 테이프’를 토대로 당시 대통령의 의사 결정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참석자 상당수는 쿠바 공습을 외쳤지만 어떻게든 전쟁은 피해야 한다며 끝내 해상 봉쇄를 선택한 케네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를 넘기고 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간의 날짜를 진하게 새긴 달력 동판을 기념으로 제작했다.
무엇이 그 결정을 가능하게 했을까. 저자 셸던 스턴은 백악관을 출입하며 케네디 대통령과 가까웠던 저널리스트 휴 사이디의 분석에서 단서를 찾는다. 사이디는 케네디 대통령이 20대 초반 2차 세계대전을 지켜보며 ‘현대전이 개인과 국가와 사회에 초래한 끔찍한 피해에 대한 철저한 혐오’를 가졌음에 주목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몽구스 작전 등을 펼치며 위기를 고조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결정적 순간 용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평소 신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사이디는 “국가 최고 정책은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에서 나오거나, 적어도 대통령의 인격에 의해 담금질된다”며 “대통령의 확신과 열정은 가족과 학교와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과 거의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혼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대부분의 경우 교육, 타고난 지성, 경험이 뒤섞인 직관에 의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7년 넘게 정치부 정당을 출입하며 품게 된 지론이 하나 있다. 어떤 정치인도 결정적 순간에 그 사람의 캐릭터를 뛰어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책과 공약이라는 객관적 근거보다 결정의 주체인 정치인의 성정을 판단 근거로 삼을 때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던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생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보면 기대보다 불안감이 크다. 평생 기업가로 살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는 대의보다 그 과정에서의 손익계산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높다. 체제 보장이 생존과 직결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라온 김 위원장은 본능적으로 자기 살길을 찾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한반도의 평화는 뒤로 밀리는 게 아닐지 두렵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한 치의 빗나감 없이 지방선거 유불리를 염두에 둔 책임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길 위에서 우린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디쯤 왔는지, 지금 멈춰선 자리가 어디인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여정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믿음, 마침내 평화의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루이스 캐럴의 동명 소설로 만든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폭풍우로 난파될 위기를 극복하고 배를 지켜낸 앨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뿐이야.”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답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나라가 곧 임하리라는 종말론적인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 길 끝에는 평화의 무지개가 뜨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함께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한마음으로 전쟁은 안 된다고 평화만이 답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