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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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포옹

입력 2018-05-25 05:05:03


얼마 전, 이모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부모님을 모시고 이종사촌 오빠가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호숫가에 자리한 식당의 진입로는 좁고 가팔랐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데, 아빠가 갑자기 차문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다. 아빠는 막무가내로 차에서 내리더니 식당 건물을 향해 휘청휘청 걷기 시작했다. 건물 출입구 앞엔 먼저 도착한 이모부께서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건물 앞에 다다른 아빠가 이모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두 분이 포옹하며 서로의 등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툭, 눈물이 떨어졌다. 종종 왕래하며 어울리던 두 분이 이번엔 꽤나 오랜만에 만났다. 그렇다곤 해도 겨우 몇 계절이었는데, 그 사이 한 분은 백발이 됐고 다른 한 분은 삭발을 했다. 게다가 두 분 모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척해졌다. 그래도 두 분이 다시 만나 서로의 등을 쓸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빠는 이모부에게 가보지 못했다. 그즈음 아빠는 수술조차 불가능한 폐암을 치료 중이었고, 이후엔 암이 전이돼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이모부가 힘든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아빠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일주일이면 서너 번쯤 한국작가회의에서 회원들과 관련된 부고 문자가 온다. 대부분 모친상이나 부친상이다. 별생각 없이 삭제하곤 했던 문자들을 어느 순간부턴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나도 이런 문자를 보내게 될 거란 예감을 하게 된 뒤였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부모가 건강한 것만큼 큰 복이 없다는 말의 무게를 절감하고 있다. 아빠와 이모부께선 투병생활을 계속하며 여명을 보낼 것이다.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는 두 분의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아직은 짐작조차 못하겠다. 다만, 그리운 이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등허리를 쓸어주는 따뜻한 포옹의 순간들이 두 분의 여명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랄 뿐이다.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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