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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영 왕따’ 없었다지만… 여실히 드러난 빙상연맹 ‘민낯’

입력 2018-05-24 05:05:03
 
빙상연맹 감사 결과 발표하는 노태강 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30일까지 대한체육회와 합동으로 빙상연맹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선수들 7차례 국제대회 기록 분석… 노선영 후반에 체력 떨어져 낙오
백철기 감독 기자회견 발언 거짓… 전명규 전 부회장 월권 행위 사실
폭행 사태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많은 국민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 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하기에 이르렀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 사이의 ‘왕따 논란’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다만 선수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대국민 사과 과정에서 거짓 해명한 코칭스태프의 직무태만이 확인됐다.

국민청원을 계기로 살펴본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의 속살은 썩어 있었다. 빙상계 ‘대부’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은 조직을 떠나서도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빙상연맹은 전 전 부회장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오히려 도왔고, 국가대표 경기복 납품을 둘러싸고 특정 업체를 밀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체육계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폭행 사태도 여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태강 제2차관은 “평창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예선전에서 특정 선수가 경기 종반부 의도적으로 가속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김보름 등은 경기 전 목표한 기록을 유지했고, 경기 후반 체력이 떨어진 노선영이 공기 저항까지 받아 간격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봤다. 경기 영상과 구간 기록 분석, 선수들의 7차례 국제대회 경기 전례 등을 살핀 결과다. 당시 노선영에 앞서 골인한 김보름 등에 대해 “선배를 망신주려 했다”는 등 국민적 비난이 극심했다. 이날도 여론은 문체부의 감사 결과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백철기 감독이 “노선영이 경기 전날 찾아와 마지막 주행 시 3번 주자로 타겠다고 말했다”고 기자회견으로 주장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백 감독은 “(순번을)선수들끼리 합의해 결정하라”고 지시했고, 선수들은 이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 백 감독이 다시 묻자 김보름 등은 “노선영이 3번 주자로 가는 것이 괜찮겠다”는 의견을 폈다.

이때 노선영은 선배로서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3번 주자를 한 번 해 보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노선영은 경기 직후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국민적 질타가 있을 것을 걱정했고, 백 감독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생각했다. 문체부는 백 감독의 직무태만과 사회적 물의 야기를 지적하며 빙상연맹의 징계 조치를 주문했다.

전 전 부회장은 2014년 3월 연맹 부회장에서 사임한 뒤에도 대표팀 감독의 중징계, 외국인 지도자들의 계약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특정 선수들만 한체대 빙상장에서 별도 훈련을 한 데에도 전 전 부회장이 개입해 있었다. 선수촌 외부에서 훈련할 경우 이뤄졌어야 할 보고 과정이 부실했다. 전 전 부회장은 감사 과정에서 “빙상연맹이 원해서 도와줬는데 무슨 문제냐”는 태도였다고 문체부 측은 전했다. 빙상연맹은 국가대표 경기복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준 정황이 포착돼 관련자들이 경찰에 수사의뢰 조치됐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를 폭행한 조재범 전 코치도 지난 16일 경찰에 수사의뢰 조치됐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이 2011년부터 여러 차례 후배 2명을 폭행한 사례도 조사됐다. 이 선수는 “훈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빙상연맹은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노 차관은 “우리 스포츠계에는 결과지상주의가 만연하다”며 “정당한 절차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메달은 더 이상 국민들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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