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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北견인·美설득 ‘고심’… 트럼프, 북미회담 성과 ‘고민’

입력 2018-05-22 05:05:02


文 대통령,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국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21일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키워드는 한반도 명운을 가를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 회복이다.

‘중재자’ 문 대통령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반발 배경을 이해시키고, 한·미 간 공조도 재확인하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세부 로드맵도 조율해내야 하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불거진 북·미 간 불신을 털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일 대남, 대미 강경책을 펴고 있는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유인하면서 ‘완전한 핵 폐기(CVID)’라는 당초 목표를 속도감 있게 달성하기 위한 세부 로드맵이 조율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된 북한의 의중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중대 조치를 취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미국이 내줄 수 있는 보상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배석자 없는 단독회담을 한 뒤 업무 오찬을 겸해 확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단독회담 때 큰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긴 했는데, 실제 트럼프 행정부와 세부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강한 요구들이 나오자 주춤하는 것 같다”며 “한·미 정상이 북한에 ‘비핵화를 해야만 경제적 보상 등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와 관련, 북·중 관계 밀착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이 적극 설명할 부분이다. 이는 비핵화 논의가 ‘한·미 대 북·중’의 대립 구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미국에 확인시키는 계기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시점상 한·미 정상회담 종료 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이어지는 수순이어서 북한 역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비핵화 조율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도 자연스럽게 풀릴 전망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 취소하고, 탈북자 송환 등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압박하는 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시한이 합의되고 그것이 이행될 경우 언제부터 제재를 완화한다는 식의 구체적 성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전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한국 정부의 역할”이라며 “문 대통령은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북·미 양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특유의 판 흔들기 전술에 맞서 한·미가 굳건한 공조를 재확인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트럼프, 낮아지는 기대감에 심기 불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주 앞으로 다가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강행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북한의 잇단 비난 성명과 강경 발언에 정상회담 성과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가 주말인 지난 토요일 밤 늦은 시각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고 싱가포르 회담을 강행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16일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핵무기 능력을 양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담화 내용에 놀라고 또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17∼18일 이틀 내리 측근들에게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지난 19일 오후 10시30분쯤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의 입장이 왜 문 대통령이 전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약속과 다르냐’고 물었다고 NYT는 전했다. 사흘 뒤 워싱턴에서 만날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질문을 한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어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큰 기대를 알아차린 김 위원장이 시간이 가면서 흐지부지될 제안들만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동의하고 향후 6개월 안에 핵무기 몇 개를 미국에 넘겨주며, 핵무기 관련 생산시설 폐쇄 및 사찰까지 허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하지만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아무 대가 없이 6개월 안에 북한으로부터 핵무기를 넘겨받겠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고민은 중국의 개입이다. 그는 최근 두 차례 김 위원장의 비밀 방중으로 양측이 밀월관계를 복원하자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북한이 강경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중국이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공개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김 위원장의 비밀 방중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중국에 대해 격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무마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에서도 “중국은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북한과의 접경 지역을 강하게 옥죄어야 한다”면서 “최근 (북·중) 국경에 구멍이 많이 생기고 이전보다 교역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그런 일(교역 증가)이 생기길 바라고 북한이 아주 성공하길 바라지만 그건 협상에 사인을 한 뒤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가 문 대통령을 만난 뒤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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