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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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낮은 이들의 소확행

입력 2018-05-18 05:05:04


올해 2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최저시급을 받는 시간제 재택근무다. 비정규직이긴 해도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8년 만이었다. 그동안 돈을 벌어오라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절약하려 애써도 비정기적인 원고료만으론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살림을 따로 나고 혼자서 일상을 꾸려가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더는 늙은 부모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정기적인 수입이 절실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규칙적인 수입이 생기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적으나마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었고, 후원하고 싶었던 몇몇 단체에 후원자로 등록해 후원금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들에겐 작은 액세서리나 쿠키, 꽃 같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언제나 받기만 하다가 나도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되자 행복했다. 이렇게 소소한 일로도 자존감이 채워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게 요즘 유행한다는 ‘소확행’인가 싶었다. 모두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 좋게도 내겐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에게 나와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공공기관에서조차 장애인에 대한 법정 의무고용률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또 장애인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한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척도는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약한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장애인들에겐 한 곳에 모아놓고 공짜 밥을 먹여주는 시혜의 복지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기회의 복지가 필요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에 우리 모두는 열광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그다지 무리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황시운(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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