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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헤매다 만난 공터 같은… 일상 속 8가지 주말 풍경

입력 2018-05-18 05:10:01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시바사키 토모카(45)의 소설집. ‘곧, 주말’에는 고요한 주말의 풍경을 담은 단편 8편이 수록돼 있다. ‘하르툼에 나는 없다’ 속 ‘나’는 오사카에서 도쿄로 1년 전 이사 와 일층 집에 살고 있다. ‘나’는 아이폰에 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등록하고 그곳의 기온을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백일홍 꽃잎이 바람에 날려 길에 쌓여 있던 주말, 친구를 따라 이 친구의 친구 결혼식 파티에 참석한다. 처음 만나는 하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일 때문에 50개국을 돌아다녔다는 아저씨에게 “하르툼에 가본 적 있냐”고 묻기도 하고 스무 살 케이의 푸념을 들어주기도 한다. 이어 누군가의 생일잔치가 있는 오코노미야끼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여기서 처음 보는 누군가의 연애 실패담을 듣고 유키에란 친구와 오사카의 한 레코드점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다 ‘나’가 다니던 카페에 그도 다녔다는 걸 알게 된다. 유키에는 “우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고 한다.

‘나’는 낮에 전철역에서 한 할머니가 젊은 여자의 스커트 자락을 매만져준 순간을 본 것이나, 낮에 친구에게 필요한 영수증을 주워준 것이나, 예전에 같은 카페를 드나들었던 유키에를 만난 것도 다 연관이 있다고 느낀다. ‘나’는 그 순간 ‘누군가가 목격하지 않았거나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일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거나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더라도 그것이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날 만난 몇몇과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그런데 택시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내려서 함께 걷게 된다. 그러다 ‘나’와 일행은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큰 공터에 당도한다. ‘터무니없이 아득하고 쓸쓸한 곳’에는 두 그루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렇게 잔잔한 일상과 만남이 이어진다.

다른 이야기도 비슷하다. 산도 바다도 좋아하지 않은 아웃도어 옷가게 점원의 주말(‘여기서 먼 곳’), 곧 문 닫는 서점에서 사진집을 선물로 받는 주말(‘개구리 왕자와 할리우드’), 서른한 살에 열아홉 살의 자기를 만난 여자의 주말(‘해피하고 뉴, 하지만은 않지만’) 등 섬세한 필치로 평범하면서 특별한 누군가의 주말을 그린다.

천천히 읽다 보면 누군가와 고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느낌이 든다. 토모카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겨준 ‘봄의 정원’처럼 어떤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주말의 평화를 선사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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