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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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조윤석] 뜨거운 지구를 식히는 방법

입력 2018-05-16 05:10:01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포항이 33도를 찍었던 지난 4월, 파키스탄의 남부 도시 나와브샤가 50.2도까지 올라 세계 기록이 경신됐다. 이상 고온과 손잡고 찾아오는 것은 강풍과 폭우 등 기상 재해다. 5월 들어 터키 앙카라에 10분 동안 기습 폭우가 쏟아져 도심이 물바다가 됐고, 인도에서는 모래폭풍과 번개, 호우로 100여명이 숨지고 300명이상이 다쳤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농도 또한 세계 평균이 410.31ppm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북극 해빙(海氷)의 감소와 해수면 상승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NASA)은 북극 베링해의 올해 4월 해빙이 2013년도 대비 10%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야말로 기후변화는 매일매일 새 역사를 쓰고 있고, 우리는 해마다 ‘올여름은 더 더울 것’이라는 가슴 서늘한 예보를 접하고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세계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고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기후변화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종종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100년 후에 닥칠 대홍수에 대비해 산 위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 노아. 의지와 신념에 찬 노아가 아니라 고립감과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노아. 미친 사람 또는 망상가의 헛소리라는 손가락질 속에서 괴로워하는 노아를 상상하며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마당인데 나 하나 이런다고 기후변화가 막아질까, 나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자괴감이 밀려오면 “기후변화는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정말로 인간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사실 이미 늦었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지구 온난화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지났으며,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렇게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뉴욕 젊은 친구들의 쿨 루프(cool roof) 캠페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쿨 루프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겨울에는 검은색 옷을 입어 햇빛을 흡수하고 여름에는 빛을 반사하는 흰색 옷을 입듯 건물 최상층에 흰색 차열 페인트를 칠해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페인트를 칠하자마자 옥상 면 바로 아래층의 실내 온도가 1∼4도 떨어질 정도로 효과적이다.

단지 페인트 하나 칠했을 뿐인데 여름철 냉방 에너지를 줄이고 도시 열섬을 완화하며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쉽고 간단한 이야기라 허탈할 지경이었다. 내 힘으로 내 집 안의 온도를 낮추고 뜨거운 지구를 조금 식힐 수 있다는 것, 그 조금이 너무나 미미해 언 발에 오줌 누기일지언정 쿨 루프는 나와 내 친구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필자에게는 무력감의 늪에서 헤엄쳐 나올 힘이 돼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도 쿨 루프를 해보자”, “한 집 한 집 칠해가다 보면 안 한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말로 십년후연구소 멤버들을 설득해 시작한 ‘쿨 루프 캠페인’이 올해로 5년차에 접어들었다. 매년 지구의 날인 4월 22일부터 하지인 6월 21일까지 하늘 아래 제일 뜨겁고 무더운 옥탑방 청년들의 지붕에 쿨 루프 페인트를 칠하는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자신의 집 옥상을 직접 칠하고 싶은데 해본 경험이 없어 주저하는 분들을 위해 쿨 루프 워크숍 현장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시원한 지구에서 살고 싶은 분들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뜨거운 옥상에서 하얀색 쿨 루프 페인트를 칠하고 내려와 떨어진 온도를 온도계로 보면 이런 기분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내가 지구를 이만큼 식혔구나. 그리고 알게 된다. 뭐라도 해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사실을.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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