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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잘하면 왕?… 네이버 웹툰, 학원폭력 조장 논란

입력 2018-05-15 05:05:04
네이버 웹툰 ‘프리드로우’의 주인공이 일진을 미화하는 발언을 하는 장면(왼쪽 위·아래). 오른쪽은 웹툰 ‘외모지상주의’에서 주인공의 친구인 한 고등학생이 정의구현을 이유로 다른 인물을 폭행하는 장면. 네이버 웹툰 화면 캡처


잘생긴 외모 내세우거나 폭력으로 모든 사건 해결 “선한 일진…” 운운하기도
방통위서 규제하려 했으나 만화계 강력 반발에 막혀
웹툰 작가 “영화·서적보다 폭력 묘사 심하지 않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웹툰(인터넷 만화) ‘외모지상주의’의 주인공은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우연히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신체능력을 얻게 된 고등학생이다. 이 작품은 연재 초기 학원폭력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호평을 받았다. 네이버 웹툰 전체 조회수 1위를 여러 번 차지할 만큼 인기도 끌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일진’들과 친구가 돼 불량배들과 맞서면서 친구를 속여 돈을 빼앗은 불량학생들의 아지트를 찾아가 폭행해 기절시키는 등 학원폭력을 미화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폭력을 소재로 한 웹툰에 미성년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은 수차례 제기됐지만 웹툰 시장에선 일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요일별로 30∼32개씩 모두 212개 작품이 연재되는 네이버 웹툰의 경우 일진을 미화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웹툰이 거의 매일 조회수 최상위권에 오른다.

토요일 웹툰 조회 수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프리드로우’는 한때 일진이었던 고교생이 주인공이다. 그는 과거를 정리하려 하지만 위기가 생길 때마다 다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주인공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진은 선한 일진과 악한 일진이 있다. (가장 어울리는) 자격 요건은 싸움과 힘, 패기와 리더십, 외모다.”

학원폭력이라도 외모가 멋있고 목적이 선하다면 정당하다는 논리다.

지난 5일 연재를 시작한 일요일 웹툰 ‘약한 영웅’은 몸집이 왜소하지만 격투 실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려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내용이다. 1회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성희롱한 동성인 일진의 손을 가방끈으로 묶고 무릎을 꿇린 뒤 얼굴에 피가 나도록 따귀를 연달아 때린다. 급우들은 강자의 출현에 경외심을 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웹툰에는 싸움 실력에 따라 학생들의 계급을 왕 귀족 평민 노예로 나누고 싸움을 못하고 폭력을 두려워하는 학생을 찐따라고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14일 “학원폭력 피해자가 법의 울타리 안에서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청소년들 사이에 강하게 있는 것 같다”며 “청소년들에게 피해자에서 벗어나 차라리 일진이 되거나 힘을 가져 일진을 응징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이런 웹툰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일부 웹툰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문제 삼아 규제를 하려 했다. 만화계에서 정부의 타율적 심의가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며 거세게 반대해 만화계가 자율규제하기로 합의했다.

웹툰 작가인 A씨는 “웹툰 속 폭력은 방송 영화 서적 등 다양한 매체에서 묘사해 온 폭력보다 심하지 않다”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학교 내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웹툰만 규제하는 것으로는 학원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네이버 웹툰 이용자수는 국내 1800만명, 해외 2200만명으로 총 4000만명이다. 웹툰은 특히 스마트폰이나 스크린으로 만화를 보는 데 익숙한 청소년과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으로 아직 판단력이 부족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는 모방 가능성이 더 높은 게 사실”이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물에 대해선 생산·유통자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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