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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민태원] 시급한 남북 보건의료 협력

입력 2018-05-14 05:10:02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한 북한 병사의 몸에서 남한에선 거의 퇴치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돼 북한 주민의 건강상태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총상을 입은 병사의 수술과 치료를 맡았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20년 의사생활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기생충이 나왔다”고 밝혔다.

내밀한 환자 정보 공개를 두고 인격 테러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북한 주민의 위생 수준과 건강·영양 실상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남한 국민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기생충 전문가인 지인한테 물으니 탈북자들에게서도 이런 기생충이 종종 발견된다고 귀띔해 줬다. 북한 사회의 보건의료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1970년대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한 북한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며 의료체계가 무너졌다. 탈북의사들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약품 공급도 끊겼다. 김정은 정권 들어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열악하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북한 주민 10명 가운데 3명이 감염성 질환으로 숨지고 5살 미만 어린이 28%는 만성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생충뿐 아니라 결핵과 간염, 말라리아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결핵의 경우 최근 국제기금 글로벌펀드를 통해 북한에 지원되던 결핵약이 오는 7월부터 공급 중단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북한의 결핵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남북 보건의료 교류 협력이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다. 보건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가장 먼저 그리고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할 영역이다.

제대로만 되면 통일로 가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독일도 동·서독 통합 16년 전에 양국의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교류를 먼저 시작했다. 74년 4월 보건의료협정을 맺으면서부터다. 의료 격차를 줄여야 통일 뒤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독일식 보건의료 교류·협력 모델을 따르면 어떨까. 가장 급한 것은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던 대북 의약품 지원이다. 구충제 결핵약 항생제 영유아분유 지원 등이 필요하다. 과거 보수 정권처럼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이 아닌 남북이 직접 의료체계를 개방하고 비정부단체(NGO)나 병원 의사 등 민간루트를 통한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을 갖는 것이다. 2007년 10·4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은 여러 보건의료 협력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고 의료 협력은 2016년 이후 사실상 끊겼다.

전문가들은 정권 변화와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협력을 위해 법적·제도적 근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적당한 시점에 남북 보건의료협정을 체결하고 관련법 제정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 전에 했던 것처럼 말이다.

‘퍼주기’식의 단순 지원보다는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개선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과 북의 의과대학이나 대형병원 간 결연을 통해 임상경험을 공유하고 학술교류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결핵 말라리아 등 질병 연구센터를 공동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 앞서가는 얘기긴 하지만 남북 협의가 잘되면 원격의료 시스템을 도입해 북한 주민을 남한 의료진이 진료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메르스나 지카바이러스 같은 해외 풍토병이 들어왔을 때 관리체계도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북 교류가 늘고 국민이 서로 오가면 전염병은 이제 남과 북 개별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전체를 보는 의료공동체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고 하니 참고가 됐으면 한다.

민태원 사회부 부장대우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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