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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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천지우] 그레이스 켈리

입력 2018-05-14 05:05:03


오는 19일 열리는 영국 왕실 결혼식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해리(33) 왕자와 미국 배우 메건 마클(36)의 결혼식이다. 신부가 흑백 혼혈 외국인인 데다 연상의 이혼녀여서 더욱 세간의 이목을 끈다. 신부의 화려한 외모와 직업도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게 한다.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 언론이 유독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CNN방송은 프린세스가 된 미국 여배우로는 마클이 두 번째라고 전했다. 프린세스는 공주를 뜻하기도 하지만 왕자비와 대공(작은 나라의 군주) 부인이라는 뜻도 있다.

왕자비 마클에 앞서 첫 번째 프린세스가 된 미국 배우는 그레이스 켈리(1929∼1982)다. 모나코라는 유럽 소국의 왕비여서 퀸이 아니라 프린세스(대공 부인)였다. 1956년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결혼한 켈리는 당시 결혼 소식으로 모나코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다. 인기 절정의 월드스타가 갑자기 왕비로 변신한 것이니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켈리의 배우 커리어는 지금의 마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고작 5년간 11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이지만 영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갈채’(1954)보다 명배우 게리 쿠퍼와 함께한 서부극 ‘하이눈’(1952),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걸작 ‘이창’(1954)이 특히 유명하다.

왕비가 된 이후 켈리의 삶은 어땠을까. 영국 팝스타 미카는 ‘그레이스 켈리’라는 곡에서 “그녀는 너무 슬퍼 보여요”라고 노래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켈리는 이국의 고루한 전통과 부딪혔다고 한다. 배우에 대한 미련이 남아 몇 차례 영화계 복귀를 시도했지만 남편과 국민들의 반대로 단념해야 했다.

많지 않은 나이(53세)에 맞이한 죽음도 비극적이었다. 차에 딸 스테파니를 태우고 직접 운전하다 산길 급커브 구간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운전 중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켈리는 숨졌고 스테파니는 살았다. 이 때문에 모녀가 차 안에서 다투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두 번째 프린세스인 마클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일단 남편이 왕위 계승 서열 6위로 왕이 될 가능성이 적어 켈리보다는 자유로울 것 같다. 또 켈리와 달리 배우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인다. 마클은 “무언가를 포기한 게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천지우 차장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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