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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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김용권] 평양에서 먹어 본 평양냉면

입력 2018-05-12 05:10:02

 
김용권 사회2부 부장


#1. 바야흐로 ‘한반도의 봄’이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남과 북에 봄이 왔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과 표정, 몸짓 하나하나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감동까지 선사했다. 두 정상은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양측 준비위원들은 멋진 조연이었다. 하지만 길이 기억될 소품들도 적지 않았다. 북한산과 금강산 그림, 도보다리와 벤치, 평양냉면…. 그 가운데 만찬장 메뉴였던 평양냉면은 인기 스타가 됐다.

#2. 그 평양냉면을 ‘평양’에서 먹어봤다. 2007년 10월이었다. 당시 ‘남포·전북 우리민족돼지농장’ 준공식을 취재하러 평양을 방문했었다. 전북지역 시장·군수와 공무원, 기자 등 130여명이 전세기를 타고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그 돼지농장은 전북도와 시·군,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이 힘을 합쳐 남북 교류사업 차원에서 지어준 것이었다.

둘째 날 점심이었던가? ‘옥류관’은 아니었다. 한 호텔 식당에서 방문단은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합석해 있던 북한 관계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오니 벌써 모든 원탁 자리가 꽉 차 있었다. 결국 6∼7명의 북한 사람들만 앉아 있던 식탁에 인사를 하고 앉았다.

먼저 나온 냉면을 그들이 먹기 시작했는데 긴 면발을 입에 넣느라 모두 하늘로 턱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양새가 영 어색해 종업원에게 가위를 주문했다. 면발을 한 번 두 번 가위로 자르는 순간, 같은 탁자에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커지며 모두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냉면이 ‘장수의 상징’이라던데, 가위를 댔으니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2박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1980년대에 지었다는 평양시내 곡선형 아파트와 남포 서해갑문 등을 보며 그 기술력에 놀랐었다. 또 대낮 대동강에서 조각배를 타는 연인들을 보며 북녘의 이미지를 상당히 바꿀 수 있었다. 물론 빨간색의 선전 글씨판과 경직돼 있던 북한 관계자들을 대할 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3.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시 “나는 백두산에 안 가봤다”며 “중국을 통해 가는 분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걱정스러운 것이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백두산은 물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쳤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 백두산에 두 차례 올랐다. 1993년 7월과 2008년 3월이다. 첫 번째는 전국언론인노동조합연맹이 주선한 중국 탐방단의 일원이었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지자 언노련이 자비 여행단을 모집했다. 각자 99만원씩 낸 전국의 언론인 180여명이 6개 팀으로 나눠 차례로 톈진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징을 돌아본 뒤 창춘에서 야간열차로 옌지에 닿은 뒤 그 산에 올랐다.

“아,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보던 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 없다. 마침 그날은 29세 생일이어서 기쁨과 의미가 더했다. 내려와 오랫동안 일행과 감동을 나눴다. 하지만 중국 쪽에서 올라야 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듬해 1월 지인들에게 보낸 연하장에 백두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담고 이렇게 적었다. “언젠가 함께 오릅시다. 그땐 우리 땅을 밟고서….”

그리고 15년 뒤 지인들과 그 산에 다시 올랐다. 3월 산행이었지만 하루 전 눈이 내린 백두산은 순백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며 오른 정상엔 우리 팀 10명과 가이드, 공안원을 합해도 15명을 넘지 않았다. 늦겨울 백두산행은 또 다른 두근거림을 주었다.

#4.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을 정점으로 한반도 주변국까지 훈풍이 넘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이 이렇게 잘 되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잘 풀어나갔으면 한다. 서두르지 말고 너무 느긋하지도 말고….” 남북 정상회담 기념식수 표지석을 쓴 여태명 교수의 말처럼 남북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길 기대한다.

화창한 5월, 다시 북한을 방문하는 꿈을 꾸어본다. 11년 전 그 돼지농장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취재하고 싶다. 더불어 백두산에 다시 오르고 싶다. 이젠 중국 땅이 아닌 북녘 땅을 밟고서….

김용권 사회2부 부장 ygki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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