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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박재찬] “당신도 착하오?”

입력 2018-04-21 05:10:02


4년 전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때였던 것 같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족 세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게 지금 이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언론에선 연일 성토가 이어졌다. 당시 부서 회의에선가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 집 근처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을까.’

늘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교회이기에 으레 ‘교회=남을 도와주는 곳’이란 인식이 배어있던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교회들은 저마다 봉사나 섬김 활동을 많이 펼친다. 그런 교회들이, 정확히 말하면 교회 목회자나 성도들이 힘겹게 사는 동네 주민들을 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사건 발생 한 달쯤 뒤였다. 세 모녀가 살던 집을 찾아갔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십자가였다. 대문 바로 맞은편 스무 걸음도 채 되지 않는 위치에 제법 규모가 큰 교회가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다. 수십 년 된 동네 토박이 교회부터 상가개척교회도 여럿 눈에 띄었다. 다들 형편에 따라 지역 사회를 위한 구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 모녀 가정을 ‘놓친 데’ 대해서는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

이달 초에는 ‘증평 모녀 사건’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 사건 속에는 남편의 자살과 생활고까지 겹쳐 있었다. ‘주위엔 분명 교회가 있었을 텐데….’ 송파 세 모녀 사건이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또 튀어나왔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가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맘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07년 말 중국 랴오양(遼陽) 지역에서 사역 중이던 창(張) 전도사 일행은 선교 여행 차 평양을 찾았다. 평양 대부흥운동이 한반도 땅에 들불처럼 번지던 때였다. 그들이 평양 상인들을 만나 물었다. “우리는 지금 예수교인을 찾고 있소.” 그러자 조선 상인이 “당신도 예수교인이요?”라며 되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조선 상인이 말했다. “그러면 당신도 착하오?”

평양대부흥 운동 당시 교회와 기독교인들 사이에선 희한한 일들이 잇따랐다. 도둑맞은 물건과 잃어버린 돈이 수중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하면 횡령하거나 훔친 돈을 돌려주는 보상 행위, 이른바 ‘양심전(良心錢)’ 운동까지 일어났다. 심지어 몰래 사람을 죽였다는 고백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나타난 신앙의 열매는 교회를 중심으로 구제와 봉사, 이웃 섬김으로도 이어졌다.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던 구한말,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법한 조선의 장사꾼이 건넨 한마디 “당신도 착하오?”는 당시 기독교인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삶 속에서 강도 높은 어려운 상황이 잇따라 닥치게 되면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점점 약해집니다. 이걸 ‘학습된 무기력’이라고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극단적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사회복지 권위자인 최길호(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의 진단이다. 연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그런 이들에게 버틸 힘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지역교회”라고 강조했다. 관공서와 별개로 집중적이고 지속적이며 조직적 대응이 가능한 곳이 교회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모든 걸 책임지라는 게 아닐 것이다. 쌀과 음식 같은 물질적 지원에 더 열심을 내라는 말도 아니다.

위기에 처한 가정을 발견하고 소리쳐 주는 것, 그들을 대신해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어렵게 지내는 이웃들의 얘기를 들어주거나 그들의 낯빛을 꼼꼼하게 살펴주는 것. 또는 문 앞에 우유나 고지서가 쌓이는 집은 없는지 확인해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동네 사랑방 같은 교회 공동체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4만 개에 달하는 전국의 편의점 수보다 많은 지역 교회들의 잠재력을 이참에 깨워보자. “당신도 착하오?”를 넘어서서 “역시 당신이었군요” 같은 칭찬이 한국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많이 건네지면 좋겠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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