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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십자가 처형

입력 2018-03-17 05:10:01
크레이기 애치슨 ‘Crucifixion(십자가 처형)’. 부분. 유화. 2001


십자가는 기독 신앙의 요체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빼놓곤 기독교를 논할 수 없다. 서기 326년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실제 매달렸던 십자가(True Cross)가 발견되면서 화가들은 ‘십자가 처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11세기 말 다프니는 예수의 피가 십자가 밑 아담의 두개골을 적심으로써 인간의 죄가 사해졌음을 묘사했다. 13세기 화가 치마부에는 저 유명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을 남겼고 뒤러, 프라 안젤리코, 벨라스케스 등 수많은 화가들이 십자가 처형을 그렸다. 이는 현대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쉽게도 예술적으로 경지에 오른 작품이 흔치 않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크레이기 애치슨(1926∼2009)은 그런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그는 50년 가까이 십자가 처형을 그렸다. 간간이 인물과 풍경도 그렸지만, 1955년 이탈리아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걸작을 본 뒤 십자가 그림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작품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고, 현대음악으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애치슨의 ‘십자가 처형’은 어린아이 그림처럼 어눌하다. 팔의 표현을 보면 못 그린 그림 같다. 그런데도 더없이 인상적이고, 맑은 울림이 전해진다. 경건하지만 무겁지 않다. 화가는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형상을 디테일을 생략한 채 핵심만 표현했다. “십자가와 예수님, 그 이상 다른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 듯하다.

곧 고난주간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다시 묵상해보는 시기다. 애치슨의 간결하고 경건한 그림은 신앙인에겐 물론이고, 새봄을 맞는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귀한 날들을 어떻게 값지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하면서.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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