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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6>] 오늘의 눈물을 견디게 하는 ‘부활-승천-재림’의 소망

입력 2018-07-21 09:11:16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자료보관소에 전시된 사진. 독일 나치에 열광하던 사람 중 대부분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었다. 박양규 목사 제공
 
독일 베르겐벨젠 수용소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무덤. 안네와 그녀의 언니 마곳 프랑크는 이 수용소에서 최후를 보냈다. 박양규 목사 제공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는 독일 나치의 점령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은신 생활을 하며 ‘안네의 일기’를 남겼다. 독일 패망을 며칠 앞둔 1945년 3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국민일보DB
 
박양규 목사


제45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됩니까?
: 그의 부활로 우리의 의로움을 확증하셨고 우리에게도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확증이 됩니다.

제49문: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됩니까?
: 그가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의 대언자(변호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그의 몸된 우리를 성령으로 도우십니다.

제52문: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는 고백은 당신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 나는 모든 슬픔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없애주신 그분이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가 모든 악인을 형벌에 던지실 것이며, 그의 택한 모든 백성을 하늘의 기쁨과 영광 속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누군가 동화처럼 생각한 것이 다른 이에겐 현실

독일 뉘른베르크에는 나치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자료보관소에는 나치에 열광하던 독일인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무려 160만명이 모여 전당대회를 했던 자료와 장소도 보존됐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나치에게 열광하던 독일인들은 뿔 달린 악마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다. 사상(思想)에 따라 나치에 열광할 수도, 혐오할 수도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사선(死線)에서 나치를 멸망시킬 누군가를 학수고대하던 이들도 있었고, 나치가 선사해 준 폭스바겐 자동차에 영혼을 바친 이들도 있었다.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나치에 동조하던 네덜란드 시민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도 나치의 멸망을 간절히 바라며 숨어 기다리던 이들도 있었다. 그 중에 한 소녀가 쓴 일기가 여기 있다.

“1944년 6월 6일 오늘이 ‘디데이’라고 BBC에서 발표했어요. 드디어 상륙작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BBC는 오늘 아침 8시에 이 뉴스를 자세히 보도했어요. 프랑스 해안에 맹렬한 폭격이 퍼부어졌습니다. 점령 지역에 대한 안전조치로 해안에서 35km 이내에 사는 사람들은 피난하라는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12시에 BBC 방송이 뉴스 도중 아이젠하워 장군, 샤를 드골 장군, 윈스턴 처칠 수상의 연설을 내보내자 은신처는 흥분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모두가 떠들어대고 마치 ‘동화’처럼 생각되던,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이 정말로 찾아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에 수록된 안네 프랑크의 일기다.

안네의 가족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암스테르담의 다락방에서 2년 넘게 숨어 지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연합군의 상륙과 독일의 패전이었고, 그 소망이 안네의 가족과 다른 네덜란드 시민들을 구별시켰다. 안네의 표현처럼 그들은 ‘동화 같은’ 소망을 기다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일기에는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다. 꿈 많은 십대 소녀가 품었던 장래희망, 짝사랑,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당장 내일을 아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 그 속에서 소녀와 가족을 지탱해준 것은 연합군이 상륙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BBC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요, 오늘의 눈물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됐다.

현세를 꿈처럼, 장차 올 미래를 현실로 여겼던 사람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사도신경 관련 부분을 들여다보면, 성부 성자 성령 중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이어 교리문답 40∼52문에서 예수의 부활과 승천, 재림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동화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이를 믿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17세기 영국은 정치 환경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 찰스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왕당파와 의회는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1620년 내전과 갈등이 반복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열망하며 대서양 건너편의 황무지로 향했던 이들이 있다. 이들에겐 평생 살아온 터전, 사회적 지위와 재산보다 신앙을 지키고, 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 더 중요했다. 이들이 미국을 개척하고 기독교 역사를 바꾼 청교도들이다.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역작 ‘청교도 사상’에서 청교도들은 “이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세상을 꿈처럼, 장차 올 세상을 현실로 여겼기에 그들은 현실의 조건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소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이렇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실의 태도는 소망하는 것에 좌우된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나, 군복무 중인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결코 내무반에서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내무반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곧 전역의 순간이 온다는 데 소망을 둔다.

소망은 이렇게 현실을 견디게 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으로 향한 시선

그리스도의 죽음, 그 숭고한 희생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된 크리스천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저마다 꿈을 꾸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때론 갈등과 화해의 일상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창조주의 섭리를 믿으면서도 내일의 불안 때문에 기도하는 연약한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크리스천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소망은 부활해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동화 같은’ 믿음이다.

사도신경에 언급된 부활, 승천, 재림은 ‘동화 같은’ 교리체계가 아니다. 사후 세계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가치(價値)가 담겨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시선은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에 맞춰져야 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중재하고, 변호하며, ‘지금’ 우리를 통치하고 보호하는 것을 ‘현실’로 간주하는 사람이야말로 크리스천들이다. 그것이 오늘의 눈물을 견디는 힘이 되고, ‘전역’하는 것과 같은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 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된다.

너무나 ‘동화’ 같은 현실이라서 그것을 망각하고 세상의 성공과 행복에 시선이 머문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그들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닌 것이다. 현재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양식은 우리의 소망과 가치관에 달려 있다.

나눔과 적용을 위해서 생각해 볼 것은
☞만일 내가 안네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을까요? 안네에게 연합군의 이야기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살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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