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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통쾌한 복수와 진정한 용서… 당신이라면

입력 2023-02-18 03:10:01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목회자의 딸로 나오는 이사라(김히어라 분)가 과거 학창시절 자신이 괴롭혔던 문동은(송혜교 분)에게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라고 항변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고등학생 딸이 ‘엄마, 내가 누굴 죽도록 때리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거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거 같아’라고 던진 질문이 충격이었고, 너무나 지옥이었다.”

최근 학교폭력을 소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쓴 김은숙 작가는 작품이 태어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이라는 내용은 어찌 보면 드라마 소재로는 다소 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끈 건 아무래도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학교 폭력 피해자는 나오고 있고,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폭력의 수위는 갈수록 잔악무도해지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일 듯합니다. 또 한국 국민 대부분이 학교 폭력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하며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김 작가와 같은 미성년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김 작가 딸의 질문을 곱씹어봤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상에는 ‘맞고 오는 것보다 차라리 때리고 오는 게 낫다’라는 식의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위 질문을 한 가지만 택할 수 있는, 또 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많은 이들의 가슴 한편에 ‘차라리 자녀가 가해자가 되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현실일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에게 ‘누가 널 때리면, 맞고만 있지 말고 너도 때려’라고 일러주는 부모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김 작가가 딸의 질문을 받고 ‘지옥이었다’고 회상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지옥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순간 작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때리는 게 차라리 낫지’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이런 현실에서 성경은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그 유명한 마태복음 5장 39절 말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입니다. 현실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가는 피해자 혹은 ‘호구’되기에 십상인 현실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컸을 법합니다.

또 ‘더 글로리’에서는 한국교회가 말하는 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질문도 던집니다. 극 중 학창시절 주인공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명은 장성한 뒤 자신을 찾아온 주인공에게 조롱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난 천국 갈 수 있거든.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

목회자 자녀라는 가해자의 이 같은 말에 많은 비신자들은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릅니다. 교회가 그토록 외친 ‘구원’이 세상 사람들에게 값싼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고요. 이는 그동안 신자 된 우리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진심 어린 용서 없이, 자기 멋대로 ‘하나님의 뜻’ 운운하며 구원과 용서를 말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다음 달 ‘더 글로리’ 시즌2 시작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되며 가해자들이 나락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가해자를 향한 복수에 통쾌함을 느끼기 전에 우리 모두 김 작가 딸의 질문을 먼저 곱씹어봐야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해자가 되기로 ‘작정’하지는 않았는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왼편 뺨도 내어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요. 이런 고찰 없이 우리 모두 그저 통쾌한 복수만을 꿈꾼다면, 그때야말로 진정 우리네 삶은 ‘지옥’과 같은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할 것입니다.

드라마 제목인 ‘더 글로리’의 사전적 의미는 ‘영광’ ‘명예’ ‘은혜’입니다. 피해자가 폭력 앞에 무기력해지며 상실한 인간의 존엄성, 명예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선결돼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신자인 우리가 먼저 ‘왼편도 돌려 대며’란 성경 구절과 성경이 말하는 ‘용서’를 끊임없이 고찰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피해자들은 없는지 살펴야겠습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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