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배고픈 이에게 밥과 희망을”… 독거 어르신 쉼터 역할도

입력 2022-12-09 05:05:01
다일공동체는 지난 34년간 올곧이 소외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해왔다. 사진은 최일도 대표가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노무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 역대 대통령과 함께 밥퍼 행사에 동참하는 모습. 다일공동체 제공


2002년부터 밥퍼 나눔의 상징이었던 답십리 지하차도 희망트리(왼쪽)는 지난 9월 서울 동대문구의 기습철거로 사라졌다. 오른쪽 사진은 최일도 대표가 최근 희망트리 철거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다일공동체 제공


김진영(가명·67)씨는 시각 장애와 자폐증을 동시에 앓고 있는 딸(35)과 단둘이 살고 있다. 딸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기에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산에서 나물을 캐다 먹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 모녀에게 손을 내민 단체는 다일공동체(대표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였다. 김씨는 8일 “일주일에 6일을 밥퍼에서 밥을 먹는다. 장애인인 우리 딸까지 반겨주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며 “밥퍼가 없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34년간 밥한끼 생명줄 사역

밥퍼는 1988년 11월 11일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에게 밥을 대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청량리역 광장, 답십리 지하차도에서 14년간 밥을 펐고 서울시의 도움으로 2002년 임시 가건물을 마련하면서 지금까지 실내에서 밥을 나누고 있다.

청량리 청과시장에서 상처 난 과일을 팔던 할머니와 같은 이들에게 지하차도 밑 한 끼는 생명줄과 다름없었다. 최일도 대표는 “하루 한 끼라도 먹기 위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거리의 형제들과 독거 어르신들로 지하차도는 늘 인산인해였다”며 “이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줄을 서서 따뜻한 식사를 기다렸다. 식탁도 의자도 없이 바닥에 앉아 굶주림을 해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도 하루에 500~600여명의 독거 어르신들이 밥퍼를 찾는다. 코로나19 때는 도시락을 배식하면서 한 끼 나눔을 이어갔다. 팬데믹이 심해지면서 문을 닫은 무료 급식소가 많아 한때 밥퍼에는 1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은 “부양해줄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있어도 짐이 되기 싫은 어르신들이 밥퍼를 찾아온다. 동대문구뿐만 아니라 경기도권에서도 많이 오신다”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돌아가기 싫은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 나누신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대표 나눔사역 자리매김

밥퍼가 독거 어르신들의 쉼터 역할도 하는 것이다. 김 부본부장은 “얼마 전에는 매일 오시던 한 어르신이 일주일 정도 보이지 않아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어 꼼짝도 못 하고 일주일간 누워계셨다고 했다”며 “그분 자녀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병원에 모셔다 드렸다. 밥퍼 사역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밥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눔 사역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됐다. 지난 4월 국민일보와 사귐과섬김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교회의 사회봉사 활동 중 ‘무료급식 제공’(34.1%)이 가장 잘하는 사역으로 꼽혔다.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밥퍼 사역은 한국사회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 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도 밥퍼가 배고픈 사람에게 밥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밥퍼 사역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98년 중국을 시작으로 8개국 빈민촌에서 무상급식 사역을 하고 있다. 또 일대일 결연을 통해 2114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꿈퍼(교육지원사업) 사역을 제공하고 있다. 소외 이웃을 위한 의료 지원을 하는 다일천사병원, 무의탁 노인들의 마지막을 돌보는 다일작은천국도 함께 운영 중이다.

“소외이웃 안식처 역할 이어갈 것”
다일공동체는 오는 24일 열릴 제35회 ‘거리성탄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1500여명이 넘게 찾아오는 독거노인 및 노숙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방한복 등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다. 그러나 거리성탄예배의 상징과도 같았던 지하차도 ‘희망트리’가 사라져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아프다. 희망트리는 200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동대문구청장의 협의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상징을 담아 세워졌다. 그러나 지난 9월 동대문구는 희망트리를 기습 철거했다.

최 대표는 “다일공동체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친 일이 없으며 어떤 정파에도 휩쓸리지 않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왔다. 그런데 희망트리를 기습 철거한 데 이어 밥퍼 건물까지 철거하라는 동대문구의 요구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동안 지켜온 무상급식의 선한 사역이 정쟁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거듭되는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밥퍼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