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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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뿌듯함, 땅에서 느끼는 천상의 기쁨

입력 2022-09-06 03:05:01


“뿌듯함, 오늘 아침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의 이름은 바로 뿌듯함입니다.” 한동안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장면 마지막 대사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련하게 스쳐 지나던 감정을 작가가 친절하게 콕 집어서 알려주었다. 아니 작가가 이 감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드라마를 쓴 것일지 모른다.

우리말은 아름답고도 깊이가 있다. ‘뿌듯하다’라는 형용사는 의태어다. 주머니가 불룩할 정도로 꽉 들어찬 모양을 묘사하는 데서 기원해 꽉 찬 느낌을 표현하는 추상적 단어로 발전했다. 성취감 자랑스러움 행복감 만족감 등과 동의어로 쓰이지만, 그들이 품지 못하는 뜻을 ‘뿌듯함’은 가지고 있다.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내가 꼭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할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어휘로는 소명(召命)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과업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이를 이룬 후에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뿌듯함이다. 이 느낌은 사람에게서 기원한 것이 아니다. 천상의 영광이 나의 삶과 가슴에 임하는 숭고한 감정이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잡아 아랫사람을 멋대로 부리고 사람들 위에서 우쭐댄다고 해서 꽉 차오름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감당 못 할 무거운 왕관을 쓴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하다. 레바논의 백향목더러 자기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큰소리치는 가시나무와 같이 말이다.(삿 9:15)

둘째, 뿌듯함은 공동체 안에서 마음을 나눌 때 찾아오는 정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발견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는 의미다. 우영우가 뿌듯함을 느끼게 된 것은 법무법인 한바다 팀이 마음을 열고 힘을 합했기에 가능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각자의 마음에 뿌듯함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마음을 열 때 각자가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대인관계의 기술이나 소통의 방법을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각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공동체의 연합을 가능하게 한다.

필자는 청년부 시절 성도의 공동체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뿌듯함을 주는지 경험했다. 일여덟 명의 리더와 임원들이 매 주일 저녁 지도 전도사님의 집에 모여 성경공부를 했다. 개울가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 단칸방이었다. 여름에는 덜덜거리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고 겨울에는 냉골에 빨간색 담요를 깔고 앉았다. 커다란 식빵 두 개를 사 가면 사모님이 설탕을 접시에 담아주셨는데 그게 저녁 식사였다. 늦은 밤 모임을 마치고 나설 때 우리 마음은 꽉 찼고 얼굴은 빛났다.

이후 어떤 교회에 부임하든지 어떤 모임의 멤버가 되든지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전도사 때는 교회학교 교사 모임에서, 담임 목회자가 되어서는 당회와 교역자회에서, 교수가 된 후에는 교수단(faculty) 모임에서, 보직을 맡으면 그 부서에서. 모두가 뿌듯함을 느끼지 못하는 지루하고 억압적인 공동체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뿌듯함도 느끼고 미래도 보장되고 사랑도 얻는다. 그러나 현실은 마냥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 냉소적인 사람, 감당하기 힘든 강적을 만나게 되고, 내가 정나미가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뿌듯함이라는 천상의 기쁨에 대한 기억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동력을 제공한다. 뿌듯함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결국 사고야 마는 값진 진주와도 같다.

장동민(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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