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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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낮에 저녁노을을 보다

입력 2022-08-10 03:05:01


저는 사진을 찍을 줄 모릅니다. 물론 휴대전화 사진이야 찍을 줄 압니다만 내놓을 만한 사진을 찍을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큼지막한 렌즈 교환용 카메라를 들고 산하를 누비는 작가들을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은퇴한 뒤 사진에 취미를 붙이는 분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대신 사진 보는 걸 좋아합니다. 잠시 쉬는 짬에 사진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보는 게 작은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깨달은 건 저녁노을을 찍은 사진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노을에 끌릴까요. 노을의 붉은색을 카메라 앵글 가득히 채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마도 노을 지는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노을 지는 곳은 모든 사람의 종착지입니다. 우리 모두 노을 질 그곳을 향해, 언제일지 모를 그때를 향해 걷는 중입니다. 노을 지는 때는 마치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처럼, 인생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직전일 때입니다. 그곳에서는 평생 움켜쥐었던 손에서 힘을 빼도 좋습니다.

노을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아직 여유로워 보입니다. 아직 하늘이 푸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미 얼굴에 붉은 기운이 비칩니다. 노을이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그 붉은 빛이 잠시 후 검은색으로 덮일 것을 알고 있을까요.

젊은이는 아직 노을을 모릅니다. 그의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노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태양이 동에서 서쪽을 향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여행을 마칠 즈음에야 노을이 주어집니다. 하루라는 단어에 담긴 눈물의 수고와 그 결실인 기쁨을 모르는 이에게는 노을이 없습니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이들이 많지만 노을이 어찌 거기에 뒤지겠습니까. 일출은 희망과 열정 외에는 그다지 할 말이 많지 못하지만 노을은 이미 긴 하루를 달렸기에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그만큼 할 말도 많습니다. 노을에는 눈물 젖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노을을 맞이한 이들은 그 말을 들으며 울 겁니다. 그에게도 눈물겨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노을은 이래저래 슬픕니다.

그리고 노을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아름다움을 쏟아 대지를 붉게 물들이도록 노을에 마지막 축복을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붉은 물감을 노을의 주머니에 담아주신 듯합니다. 그래서 노을은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최후의 미를 붉게 뽐내고 있습니다.

저는 모세가 느보산에 오른 때도 가나안 땅이 온통 붉은 노을로 빛나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사람 모세의 120년 긴 인생이 마지막 빛을 발하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또 기왕이면 붉게 물든 가나안을 보게 하고 싶으신 게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스라엘이 곧 겪게 될 가나안 전쟁의 핏빛을 하나님께서는 노을의 아름다움으로 덮어서 모세에게 보이셨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였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느보산 위의 모세가 노을에 덮인 가나안을 본 후 영생의 잠을 자듯 우리에게도 그렇게 어둠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노을이 있습니다. 그때가 머지않았습니다. 노을처럼 천천히 아름답게 물들고 싶습니다. 8월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가올 시간을 미리 보고자 함입니다. 언제나 한낮일 것으로 생각하다가 노을을 만나면 큰일이지요. 아름다운 노을을 꿈꾼다면 아직 대낮인 푸른 8월을 충실히 살아야 할 겁니다.

8월은 조금씩 색깔 있는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달이기도 하니까요. 노을이 질 그때를 바라보며 8월을 충실하게 살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메시아 사역 내내 늘 당신의 찬란한 노을인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셨답니다.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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