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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발 디딘 곳 디아스포라 본향 되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입력 2022-07-16 03:10:01
인천의 복합문화공간 ‘개항도시’는 이번 여정의 종착지다. ‘골목길 역사산책’의 저자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이 대표로 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제공






7월의 걷기 묵상은 한낮의 땡볕을 피해 오후에 시작한다. 노을빛 아름다운 인천으로 향한다. 동인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언덕 위 인천 내리교회(김흥규 목사)를 찾아간다. 1885년 4월 부활절 아침에 복음이 발을 디딘 곳, 미국 북감리교 파송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로부터 시작된 내리교회 역사전시관에 들어선다.

내리교회 역사관에서 최영호 목사를 만났다. 최 목사는 2000년부터 22년째 역사관 해설을 맡고 있다. 그는 “인천역이나 월미도에서 시작해 내리교회 쪽으로 언덕을 넘어오곤 하는데 청년들도 힘들어하는 난코스”라며 “내리교회에서 시작해 개항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좋다”고 말했다.

내리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파송한 전도자 노병일의 가정교회에서 시작했다. 조지 존스 선교사는 2대 목사로 내리교회에서 사역하며, 인천 강화 부평 해주 등 서해권 일대에 복음을 전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동오 신홍식 목사가 출옥 후인 1922년부터 5년간 내리교회를 담임했다.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교, 최초의 여선교회 조직, 최초의 기독청년 조직인 엡윗청년회 등이 이곳에서 처음 선보였다.

인천은 또한 디아스포라의 본향이다. 1903년 배를 타고 미국 하와이로 건너간 한국 최초의 공식 이민단 102명 중에서 50명이 내리교인이었다. 교회는 같은 해 한국 최초로 홍승하 선교사를 하와이로 보내 미주 최초 한인교회인 호놀룰루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시작했다. 김흥규 내리교회 담임목사는 “해외 선교사가 들어와 세운 내리교회가 동시에 최초의 한인 해외 선교사를 내보낸 교회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내리교회 뒤쪽으로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가 있다. 역시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해군 군종 사제 찰스 코르프 주교가 세웠다. 주교와 동행한 성공회 의료선교사 엘리바 랜디스가 이곳에 병원을 개설해 아픈 이를 치료했다. 주민들은 약을 처방하고 고아를 돌보는 랜디스 선교사를 ‘약대인’으로 불렀는데, 정작 그는 33세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에 걸려 숨졌다. 한국을 사랑한 그는 바라던 대로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안장됐다. 지금은 인천 연수구 외국인묘지에 묻혀 있다.

교회 담장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전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홍예문 위를 지나가니 자유공원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던 곳으로 인천항을 굽어보는 자리, 지금은 동물원의 새장과 더불어 월미도를 바라보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인천상륙작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는 꽃병과 함께 한때 화염병도 오갔다. 잠시 서서 해넘이를 바라본다. 이념의 시대는 벌써 저물었다.

경사로를 내려가면 차이나타운이다. 지금은 ‘짜장면박물관’이 된 옛 공화춘 건물을 찾아간다. 짜장면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다. 중국 산둥성 이민자들이 철도 노동자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인천에서 시작한 짜장면,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시킨 피자, 베트남 보트피플이 호주에서 만든 월남쌈 등 디아스포라 음식이 세계 요식업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새로운 것은 늘 경계에서, 주변부에서 나온다. 소설 ‘파친코’와 영화 ‘미나리’도 그렇다. 디아스포라의 교훈이다.

개항장에선 여러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는데, 골인 지점으로는 ‘개항도시’를 추천한다. 답동성당 옆에 위치해 있다. 2층 건물에 넓은 옥상과 탁 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개항도시는 한국레저경영연구소에서 경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청자에 담아낸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이웃을 만난다. 이번 여정을 안내한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이 대표다. 최 소장은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내한 당시 커피 맛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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