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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먹방 시대의 반가운 소식좌

입력 2022-06-11 04:10:01


요즘 ‘소식좌’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소식좌는 적게 먹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최근 방송에서 소식좌로 주목을 받는 연예인들은 자신이 먹을 양만큼 먹거나 천천히 오래 씹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듀서 코드쿤스트, 방송인 박소현, 배우 안소희 등이 대표적이다. 코드쿤스트는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박소현은 바닐라 라테 한 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안소희는 달걀흰자 반 개를 2분 동안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덕분에 소식의 이로움을 전하는 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소식하면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되고 오래 씹으면 뇌로 가는 혈류가 늘어 많은 양의 산소가 공급되기 때문에 치매도 예방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TV나 유튜브 등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먹방’에 불편했던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동안 요리를 겨루거나, 맛집을 소개하고, 많이 먹는 장면을 찍은 콘텐츠가 범람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더더욱 많아졌다. 예전 구박받던 대식가들은 지금은 ‘추앙’을 받고 있다.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초기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누군가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한국의 트렌드”라며 “한국의 1인 가구 급증과 여성들의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에 먹방이 외로움과 결핍의 해독제와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식도락 관음증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기쁨을 채워줄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던졌다.

사람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음식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식이 행복의 지표가 되면서 음식은 또 다른 우상이 돼 갔다. 그리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진실이 잊혀 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등과 공동으로 펴낸 ‘2021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실태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는 7억2000만∼8억1100만명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코로나 사태, 전쟁 등으로 기아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식량 부족은 심각하다. 아프리카 인구 5명 가운데 1명꼴로 영양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 가운데 22%인 1억4900만명이 발육 부진, 4500만명(6.7%)은 체력 저하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세계 식량의 3분의 1은 버려지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연간 약 1조 달러(약 125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산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사상을 집대성한 ‘신학대전’에서 식탐을 교만 나태 탐욕 등과 함께 ‘7가지 죽을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식탐이라는 악행은 음식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성으로 규제되지 않는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정의했다. 식탐은 자연스럽게 탐욕과 통한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사람의 마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채워야 한다. 아퀴나스는 식탐의 죄를 범하는 5가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첫째, 너무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는 것. 둘째, 너무 맛있게 먹는 것. 셋째, 배가 불렀는데도 먹는 것. 넷째, 정해진 식사 시간을 벗어나 먹는 것. 다섯째,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먹고 마심에 있어서 무절제한 욕망에 대한 경고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일용할 양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기독교인은 무언가 작정하고 기도할 때 그 일용할 양식을 끊고 금식하는 전통이 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 금식의 시간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데 보내는 거룩한 시간이다. 동시에 일용할 양식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있다면 더는 원하지 말자. 그리고 그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맹경환 뉴콘텐츠팀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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