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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일 기자의 미션 라떼] 푸틴 러시아 정교회 신자라는데… 무익한 전쟁 그만둬야

입력 2022-03-26 03:10:02
러시아 모스크바 한 거리에서 2011년 5월 9일 대조국전쟁 전승기념일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이 탱크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소련을 거대한 악으로 규정했다. 결국 1941년 6월 22일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국경을 넘는다. 소련 남부의 유전 지대를 차지하는 게 우선 목표였지만 마음이 바뀐 히틀러는 이듬해 7월 주력 부대를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로 보낸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의 우상화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를 폐허로 만든 뒤 소련의 전의를 상실케 하겠다는 의도였다.

볼가강 하류의 스탈린그라드를 함락하면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이 열릴 터였다. 이어 모스크바까지 함락하면 광활한 소련이 히틀러의 손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히틀러는 이를 발판 삼아 유럽과 세계를 기어코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독일군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밟았다면 충분히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남녀노소 모두 전선에 배치됐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들도 군수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다. 스탈린그라드 주민들은 ‘청야전술’도 썼다.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물자와 식량을 불태워 상대를 말려버리는 전술이었다.

점령지를 약탈해 보급하려던 나치의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보급 부대를 기다리느라 진격이 수시로 늦어졌다. 금방 끝날 거로 봤던 전투는 한없이 길어졌다. 교착된 전선에 혹독한 추위까지 찾아왔다. 독일군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에 대비하지 못했다. 총상보다 동사하는 군인이 많아졌지만, 히틀러의 헛된 야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럴수록 스탈린은 스탈린그라드의 지휘관들에게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선을 지키다 죽으라고 명령했다. 양측의 명운을 건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승기는 소련으로 기울었다. 소련은 후방에서 대대적인 모병에 나서는 동시에 신형 전투기와 탱크, 야포 등 무기를 생산했다.

얼마 남지 않은 군인들이 온 힘을 다해 도시의 끄트머리에서 버티고 있던 1942년 말 스탈린은 100만 대군과 최신 무기를 스탈린그라드에 쏟아부어 적군 22개 사단을 일시에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독일군을 이끌던 파울루스 원수가 항복하면서 소련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볼가강을 넘어 모스크바로 진격하려던 독일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 병사 80만여명, 소련군 100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인류 역사상 단일 전투에서 이보다 많은 희생자가 나온 예가 없다.

이 작전 실패는 독일에 엄청난 시련을 안겼다. 이후 독일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베를린으로 향하는 소련군의 진격 속도는 빨라졌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마지막 숨통을 조인 건 다름 아닌 소련이었다.

소련은 1941년부터 45년까지 독일과의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5월 9일이면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것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대조국전쟁의 흔적이 엿보인다. 공수는 바뀌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과거의 나치 독일,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입장에 섰다.

결사 항전하는 우크라이나군과 국민 앞에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러시아의 공세가 번번이 막히고 있다. 그럴수록 러시아군은 민간인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악수를 두고 있다. 나치의 만행을 답습하는 셈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 속에서 히틀러의 실패가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러시아 정교회의 독실한 신자라는 푸틴 대통령이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무익한 전쟁을 스스로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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