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부모 자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전수조사를 반복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자녀들은 자신의 감정조차 돌보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공감이 만들어내는 힘은 세기 때문이다. 서울 영훈고 최관하 국어 교사가 지난 11월 진행한 수업 풍경이다. 공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오늘 수업은 없대” “누가 뭐라든 너답게 살아가” “넌 나에게 소중해” “잘 견뎌왔어” “사랑해” “잘하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넌 너 자체로도 정말 예뻐” “너라서 해낸 거야” “언제나 곁에 있을게” “무너지지 마” “여기에서 기다릴게” “조급해하지 마” “느려도 돼” “멈추진 마”….
학생들은 ‘요즘 들으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는 말’을 진심을 다해 서로 말해주고 있었다. 교실 한쪽에서는 “쑥스럽다”고 했지만 듣고 싶은 말을 듣는 몇 명은 이미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들의 말은 충고나 조언이 아닌 공감의 언어였다. 아이들은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소중한 친구’로 느껴졌다.
수업은 계속됐다. 선생님은 “학급의 모든 친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별이었다. 아이들은 입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별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별의 얼굴에는 미소가 비쳤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소리치는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란 이처럼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함께 머무는 것이다.
수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휴대전화 문자로 부모님에게 ‘요즘 들으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는 말’을 묻고, 그 말을 전화로 말하도록 제안했다. 진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잘하고 있어. 사랑해, 엄마.”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이는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진이에게 쏟아졌다. 선생님은 진이에게 다가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야, 엄마에게 잘 말해드렸구나. 그런데 눈물을 많이 흘리네.” “네, 선생님. 엄마에게 미안한 게 많아서 울컥했어요.”
진이로부터 촉발돼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얼굴이 상기되고 수업 시작 때보다 훨씬 더 밝아지며 기쁨의 얼굴로 변했다. 지금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에, 누군가 나의 감정을 함께 느껴주었기에 행복해진 것이다.
공감은 이처럼 타인을 연민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도 그 마음 알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내가 저런 상황에 부닥쳤더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아니라 “저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저런 상황에 부닥쳤고 앞으로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다. 그래서 공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공감은 자신의 의견을 무작정 피력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율하도록 해준다. 공감 능력은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사람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조건 나를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이며, 공감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심리적 심폐소생술’과 같다”고 말했다. 세상과 단절돼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누군가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어봐주고 공감해줄 때 멈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듯, 상처투성이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단 그는 공감할 때 ‘충조평판’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즉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은 하지 말고 경청하라는 것. 아무런 비난 없이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산소호흡기와 같다. 만일 자녀가 친구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주는 것이다.
공감은 하나님의 시선이다.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영성이 깊은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공감할 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과 연민(동정)은 다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이 마음속에 흐르는 게 공감이라면 연민은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열등함에서 출발한 감정이다. 공감은 착한 사람, 섬세한 사람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모든 사람의 능력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