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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 ‘생각하는 갈대’는 오직 예수 안에서 위대하다

입력 2021-08-20 19:40:02
게티이미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세계의 지평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낯익은 명언들은 프랑스의 과학자, 수학자, 사상가인 블레즈 파스칼(1623~1662·아래 사진)이 기독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다.

‘팡세’는 많은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서 쓰인 기독교 변증론의 초고였다. 파스칼은 말년에 강력한 신앙 체험을 한 후 얀센 주의 수도원에서 연구와 집필에 몰두했다. 사후 그의 방에서 순서도 연속성도 없는 900여개에 달하는 메모들이 발견됐다. 그가 깊이 묵상한 내용을 틈틈이 기록한 것들이다. 1670년 유족과 친지들이 파스칼의 글 묶음을 모아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씨의 팡세(Pensees, 생각들)’라는 제목으로 펴냈고 이후 ‘팡세’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파스칼의 경구적 문체와 미완의 특징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책이 가진 힘은 문체가 아닌 작가의 사상이다. 파스칼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참상과 하나님을 가진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와 같은 갈대처럼 약한 존재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 같은 존재이나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강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자신을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다.”(‘팡세’ 단장 391)

파스칼은 갈대처럼 ‘인간 본성의 모순과 이중성’에 대한 해답을 성경 안에서 찾는다. 그는 인간은 위대한 존재이자 비참한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의 위대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점에서 위대하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나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위대함이다.”(‘팡세’ 단장 218)

파스칼은 인간의 비참함이 폐위된 군주의 비참함과 같다고 주장한다. 왕위계승자로 태어났지만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상실감과 갈망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비참함이란 것이다. 그러나 파스칼은 각 사람 안에 비참함을 경험하고도 사라지지 않은 위대함과 영광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창조주 형상의 위대함이 남아 있다는 것. 그러기에 우리 안엔 비참함과 탁월함이 함께 존재한다. 지워질 수 없는 하나님 형상의 위대함과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비참함이 공존하는 모순이 곳곳에 있다.

파스칼이 당대의 철학자와 다른 점은 인간의 비참에 대한 인식이 극에 달하는 순간 비로소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모순은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비참을 하나로 체현(體現)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 중개자가 없다면 신과의 모든 교섭은 단절된다는 것.

더욱이 그는 단순히 사유와 인식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유하자고 말한다. 그 궁극의 지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느껴지는 하나님.”(‘팡세’ 단장 225)

인간은 우주 만물의 이치를 직면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회피’를 선택한다. 진정한 행복을 회피하고 권력과 물질로 위로받으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존재이다. 파스칼은 하나님께 위로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로 받아라. 당신이 위로를 기대해야 할 것은 당신에게서가 아니다. 반대로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위로를 기대해야 한다.”(‘팡세’ 단장 393) 그러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위로가 온다. 그것은 바로 신앙이다. “만약 인간이 신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다면 왜 신 안에서만 행복한가. 만약 인간이 신을 위해 지어졌다면 왜 그토록 신을 거역하는가.”(‘팡세’ 단장 247)

“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나와 비교하라”(‘팡세’ 단장 751)에서 ‘나’는 주님이시다. 인생의 의미를 못 찾은 사람은 학벌, 재산, 외모 등에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하나님과 나를 비교하라’는 말은 ‘너 자신과 비교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보다 나아졌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부족하면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불의 밤’, 두 번째 회심

파스칼은 짧은 생애 동안 수학, 물리학, 신앙적인 변증과 문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열두 살에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 기하학 12번 명제를 증명해 냈으며, 몇 년 뒤 파스칼정리를 담은 수학 논문 ‘원추곡선론’을 발표했다. 계산기를 발명하고, 근대 확률 이론의 기초를 세운 천재 수학자다. 또 현대의 자동차나 비행기 기술에 꼭 필요한 이론인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요, 합승 마차 체계라는 오늘날의 대중교통 개념을 창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646년 첫 번째 회심을 경험했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천재적인 활약으로 높아진 명성에 기대 한동안 귀족 사교생활에 빠졌다가 1654년 결정적인 두 번째 회심을 했다. 이른바 ‘불의 밤’ 사건으로 불리는 파스칼의 두 번째 회심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불. 철학자나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심정, 기쁨, 평화…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는 그에게서 떠났었다. 나의 하나님, 나를 떠나시려나이까. 영원히 그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팡세’ 단장 737)

성령을 체험한 후 쓴듯한 이 메모는 파스칼이 사망한 후 그의 옷에 꿰매져 있는 종이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는 이것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번째 회심 이후 자신의 천재성을 신과 인간에 대한 탐구에 쏟아부었다.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존재’를 밝히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은 비천함과 동시에 위대한 존재이다. 17세기의 파스칼이 말한다. “하나님 없는 삶은 비참하며 이를 깨닫는 것은 위대하다.” 이 명제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를 여전히 묵상하게 한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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