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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 지옥에서 천국까지 먼 영혼의 순례길 그 길에서 찾은 유일한 빛 복음!

입력 2021-06-11 19:35:01
이탈리아 산타 크로체 광장에 세워진 단테의 동상. 게티이미지





 
왼쪽은 1593년 판 ‘단테의 신곡’ 표지, 오른쪽은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
 
도미니코 디 미켈리노의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는 왼손에 신곡을, 오른손으로 지옥을 가리키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 벽화.




이탈리아의 단테 알리기에(1265∼1321)는 ‘유배의 삶’을 ‘순례의 삶’으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작가로 기억하고 싶다. 그는 평생 피렌체를 사랑했지만 1302년 날조된 고발 때문에 이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겨우 서른일곱이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해야만 사면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거부하고 유배자로 살았다.

그가 세상에 대항하는 방법은 글쓰기였다. 그는 유배 시절 여러 권의 책을 썼으나 ‘신곡’이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신곡’을 통해 평생 고민했던 종교·정치·윤리 문제들의 해답을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신곡’이 피렌체로 돌아가는 촉매제가 되길 바랐으나 ‘신곡’의 천국 편을 끝낸 후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신곡은 그를 피렌체로 귀환시켜주진 못했지만 ‘어두운 숲’과 같았던 그의 인생길에 천국을 향하도록 돕는 나침반이 돼주었다. 그는 작품에서 지옥과 연옥 천국에 이르는 여행을 하면서 모순되고 불합리한 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복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결국 ‘신곡’은 그의 삶을 유배에서 순례로 바꾸어 준 작품이었다.
 
유배에서 순례로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순례를 담은 대서사시다. 어두운 숲속에서 방황하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라는 인도자를 만나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베아트리체에 이끌려 천국을 순례하는 내용으로 기독교 문학 중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단테는 유배를 당하고 약 5년 후인 1307년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야기의 시기는 유배 2년 전인 1300년의 성 금요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인생의 중반기에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숲속이었다. 그 가혹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도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본 두세 가지 일을 이야기할까 한다.” (‘지옥 편 제1곡’ 중)

그가 말하는 ‘어둠의 숲’은 그의 정치적 유배 상태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고,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길을 잃은 자신의 상태를 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단테는 왜 천국이 아닌 지옥부터 이야기했을까. 그는 ‘신곡’에서 천국만 보여주지도 않고 천국을 먼저 가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지옥은 천국에 이르는 길목, 천국은 지옥 없이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테가 구원만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지옥은 보여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단테의 고뇌는 지옥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왜 죄를 지었을까, 죄짓지 않는 길은 없었을까. 죄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했다. 단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높이 평가했지만 겸손도 강조했다. 인간은 겸손을 통해 죄를 멀리할 수 있고,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인간의 구원을 가로막는 것을 탐욕과 오만, 음욕으로 파악했다. 이런 것들이 지나치면 죄가 된다고 봤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단테는 ‘지옥 편’에서 동시대의 인물을 많이 넣어 묘사했다. 인간의 죄의식을 파헤치며 말하고자 한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단테의 연옥은 배움과 성장의 장소로 묘사된다. 지옥 편은 풍자적이지만 연옥 편은 이 땅에 사는 순례의 삶에 대해 가장 풍성하게 기독교적으로 인도해 준다. 단테의 연옥은 우리의 욕구를 크게 재편하고 정화하는 곳이다. 탐욕은 관대함으로, 탐식은 절제로, 오만함은 겸손함 등으로 바뀐다. 개신교회는 사후의 연옥이라는 단테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은총이 영혼을 정화한다는 관점으로 연옥 편을 읽는다면 수긍이 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목마르고 배고파하며 다시 거룩해진다…나는 그것을 고통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위로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갈망이 우리를 그 나무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 나무 때문에 그리스도는 열린 혈관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때 기쁨 가운데 ‘엘리’라고 말씀하셨다.”(‘연옥 편 제23곡’ 중)
 
천국의 길잡이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누구인지도 모를 때 만난 복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된다. 베아트리체는 완성된 기독교 신자로 상징된다. 베아트리체는 피렌체에 살았으며 단테를 알았던 실제 인물이다. 단테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9년 뒤 피렌체 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한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이때 받은 강렬한 느낌은 그의 서정시집 ‘신생’에 잘 드러나 있다. 베아트리체는 ‘신생’에선 신성한 존재로 ‘향연’에선 세속적인 여인으로 ‘신곡’에선 깊은 이해력을 지닌 여인으로 등장해 단테를 인도한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국을 여행한다. 그녀는 단테를 아홉 개 낮은 하늘로 인도하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설명해 준다. ‘천국 편 제7곡’에서 인간은 죄악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되면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고상하면서도 장엄한 사건으로 인간의 죄악을 다스렸다. 단테는 천국을 여행하면서 하나님의 신성한 빛에 점점 익숙해진다.

‘신곡’은 아직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는 사람들의 소중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단테는 인류 영혼의 대표자이다. 지옥과 연옥은 고뇌의 상징, 유혹의 세계이다. 천국은 지옥과 연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수정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물로 묘사된다.

‘신곡’은 서곡을 포함해 지옥 편 34곡, 연옥 편 33곡, 천국 편 33곡 등 모두 100곡으로 구성됐다. 신곡의 분량이 장대해 지옥 편을 읽고 중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평론가들은 신곡 중 지옥 편만 읽는 것은 지하실과 하수구에만 며칠 머문 다음 어떤 대도시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영적 훈련의 구체적인 요령을 많이 담고 있는 연옥과 천국 편도 읽기를 권한다.

단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죄악의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고난에 처한 우리의 삶이 유배가 아닌 순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 땅에 이미 이뤄진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에 집중해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은 죄에서 회개로, 회개에서 구원으로 진보하는 연습의 과정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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