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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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불을 꺼야 할 때

입력 2021-05-26 03:10:01


손바닥처럼 작지만 115년 동안 섬을 지켜온 교회가 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따라 이젠 연로한 노인들이 남았습니다. 예배당도 세월하고 무관할 수 없어 지붕에서 비가 새기도 하고, 바닥이 삐걱거리기도 합니다. 천장의 전구도 어두침침해 성경과 찬송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밝은 LED 전구로 교체하고 몇 군데를 손봤던 봉사는 의미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한 교우 가정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다 평소 궁금했던 걸 물었습니다. 혹시 밤에 소라를 잡으러 나갔다 밀물에 갇힌 적이 없는지 말이지요. 바다를 잘 아는 사람들도 아차 하는 순간 그런 일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들고 있는 불을 꺼야 해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으면 오히려 바다 쪽으로 들어가기가 쉬운데 그럴 때면 불을 끄고 사방의 어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불을 끄는 것이라는 말은 이 시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기에 충분했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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