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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 진리의 문은 일상 속에 숨겨져 있다

입력 2020-11-27 18:50:01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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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는 문학의 원형이자 영성의 원천인 성경 말씀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나누는 코너이다. 영성 작가들이 하나님을 향해 떠나는 긴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1959년 미국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채플 시간. 마지못해 끌려와 앉은 회의적이고 반항적인 고등학생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교목으로 부임한 프레드릭 비크너(아래 사진)가 얍복강에 있던 야곱을 그린 창세기의 위대한 장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창세기 32장 23~30절,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 식솔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누군가와 날이 새도록 씨름하는 장면이었다.

“어둠이 살짝 걷히며 적수의 얼굴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얼굴입니다. 드넓고 강하고 고통으로 반쯤 망가졌으며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온갖 어두운 나날 동안 피해 다니던 사람이 마침내 그 앞에서 이렇게 외치게 되는 얼굴입니다. ‘저를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그가 가진 교활함이나 의지력으로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니라 오로지 선물로만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찬란한 패배’를 주제로 한 설교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씨름했던 적수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적수인 이유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기 전에 모든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기억하십시오. 상한 발을 딛고 휘청거리며 무덤에서 나와 부활로 걸어가는 그분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몸에는 패배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찬란한 패배입니다.”

비크너는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면 대부분 교회에 발도 들여놓지 않을 거라는 절박감이 들어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고 ‘어둠의 비밀’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설교와 글에서 전통적인 종교적 언어와 이미지는 최대한 피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익히 알 만한 인물과 이야기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의미를 띠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독창적인 스토리텔러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인 프레드릭 비크너(94)의 글을 읽다 보면 그동안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비유와 상징으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는 ‘진리를 말하다’에서 “침묵에 말이라는 테두리를 두르는 것이 설교”이며 “복음은 말이기 전에 침묵”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말로써 테를 두르고 있는 그 침묵, 자신이 하는 말이 태어난 곳이요 자신의 말이 깨고 나온 곳이며 자신의 말을 삼키는 곳인 침묵이 오히려 말 자체에 비해 진리의 신비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또 ‘어둠 속의 비밀’에선 공허와 불안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침묵, 그분의 부재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워함으로써 그분을 가장 잘 알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서구에서 ‘가장 독창적인 스토리텔러’로 평가받는 비크너는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설교자와 기독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기독 작가 필립 얀시는 “비크너를 스승으로 삼아, 내게 너무 친숙해져 버린 복음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설교와 다른 일반적 설교의 차이는 셰익스피어 희곡과 평범한 교회의 성탄절 성극에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크너의 전복적인 메시지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빛을 발했다. 기독 대학들은 그의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했고, 목사들은 강단에서 그를 인용하며, 작가 지망생들은 그의 문체를 연구한다.

그의 책은 설교라기보다 소설처럼 읽힌다. 사실 그는 설교자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소설가였다. 무엇을 쓰건 실감 나는 묘사와 흥미로운 줄거리로 긴장감을 주는 소설 기법을 사용했다. 그는 종교적 회의가 가득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 심정으로, 믿음이 있는 이들과 믿음을 의심하는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고통의 청지기’가 되다

비크너의 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그가 고통의 문을 통해 기쁨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인생이나 고통이 있으며, 묻어버린 슬픔과 상처 입은 기억이 있다. 그가 열 살 때, 삶의 중압감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수성 강한 소년은 내면의 어둠과 싸우고 궁극적인 존재를 갈망하며 글쓰기에 매달렸다. 24세에 펴낸 소설 ‘긴 하루의 죽음’으로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창작의 벽에 부딪혀 방황할 무렵이었다. 당시 아파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뉴욕 매디슨 애비뉴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유명한 설교자 조지 버트릭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였다.

1953년 어느 주일, 버트릭 목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과 신자의 마음에서 예수님이 왕좌에 오르시는 사건을 대비하며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사탄이 내민 왕관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럼에도 왕입니다. 그 이유는 그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왕관을 쓰고 또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적인 대관식은 ‘고백과 눈물과 그리고 큰 웃음 가운데’ 거행됩니다.”

비크너는 ‘큰 웃음’이란 말을 듣는 순간, 삶의 여정에서 숨겨진 문 하나가 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찾던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도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의 마음속에 즉위하셨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통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고통의 청지기’로 살기로 한다. 이런 마음은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에 기록됐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안에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우리의 눈과 더불어 마음도 열어주는 이러한 순간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믿기로 작정했다. 나는 그것을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 은혜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중)

그 후 그는 유니언신학교에 입학, 라인홀드 니버, 제임스 뮬런버그, 폴 틸리히 등 신학의 거장들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은 그는 9년간 사립학교 교목으로 종교와 문학을 가르쳤다.

그의 저작들은 미국 동부의 엘리트와 보수적 그리스도인, 극과 극의 두 독자층 모두를 끌어들이는 보기 드문 위업을 이뤘다. 1981년 ‘고드릭’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30권 넘는 그의 책은 전 세계에서 27개 넘는 언어로 출판됐다. 국내 독자들이 처음 만난 그의 책은 2003년 출간된 ‘하나님을 향한 여정’(요단)이다. 이외 ‘어둠 속의 비밀’(포이에마), ‘통쾌한 희망사전’(요단), ‘주목할 만한 일상’(비아토르), ‘진리를 말하다’(비아토르),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비아토르) 등이 있다.

그의 책 중 가장 먼저 읽길 권하는 책은 ‘진리를 말하다’이다. 비극 희극 동화로 보는 복음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책에서 그는 기독교의 핵심을 요약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어둠 속의 비밀’에는 비크너가 50여년에 걸쳐 나눈 문학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설교와 강연, 기고문이 담겼다.

그의 모든 저작의 통일된 주제는 ‘당신의 삶의 귀 기울이기’이다. 비크너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는 통로가 각자의 일상이라며, 하나님이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면한다.

“하나님께서는 귀를 열지 않으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께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일상에서 멈추고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너무 익숙해져 특별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조금 낮은 자세로,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주목할 만한 일상’ 중)

현재 버몬트주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해 전업 작가로 살고 있는 그는 삶 속에 숨겨진 거룩한 본질을 찾아 글로 옮기고 있다. 삶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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