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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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7월 9일] 누구의 의로 사십니까

입력 2020-07-09 00:15:01


찬송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462장(통 51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5장 25~32절


말씀 : ‘잃은 것’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무엇일까요.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들어가지 않은 아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기서 우리는 한 가족 안에서도 은혜로 사는 자와 자기 의로 사는 자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먼저 자기 의로 사는 자는 상대적인 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일에 충실했던 큰아들은 동생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큰아들은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환영하며 축하 잔치까지 열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몹시 상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위해 잔치를 열면서, 열심히 일하던 큰아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큰아들이 같은 심정으로 기뻐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에게 당연한 이 일이 큰아들에게는 오히려 화가 돼 집에 들어가지 않게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소외된 채 이 기쁨의 잔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의 기준에서는 아버지의 행동이 공정하지 못했게 느껴졌습니다.

자기 의로 사는 자는 자신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큰아들의 생각은 아버지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방탕하게 생활한 동생은 벌을 받고 굶주리는 게 당연하다 여겼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착하게 산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던 아버지가, 죄를 지은 동생은 환대하고 송아지까지 잡으니 의롭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가진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인과응보의 법칙이었습니다. 의롭게 산 사람은 복을 받고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받아들여 졌습니다. 그러니 죄인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예수님은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자기 의로 사는 자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진정한 의도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실 아버지가 원한 것은 일을 잘하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아들을 원했습니다.

큰아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아버지를 멀리했고, 작은아들은 노골적으로 아버지께 반항함으로 아버지를 멀리했습니다. 둘 다 아버지를 거역했다는 점은 같은데, 작은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반면 큰아들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잃은 아들 비유에서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런데 형은 동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기도 : 의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자비로운 아버지의 진정한 의도를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천국 잔치를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장덕봉 목사(요나3일영성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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