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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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키사스

입력 2020-01-10 04:10:01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은 피해를 본 대로 돌려준다는 응보 원리의 원초적 형태다. lex는 법을 의미하고 talionis는 보복을 뜻하는 라틴어 talio의 소유격이다.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에 이 원리가 나타나 있다.

탈리오 법칙은 이슬람에서는 ‘키사스(Qisas)’에 해당한다.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서는 이 원칙이 곧이곧대로 적용되기도 한다. 이란 형법에는 살인과 상해 두 종류의 키사스 범죄가 있다.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은 법원 허가를 받아 살인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상해를 입은 경우에도 가해자에게 같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란 법원은 2017년 염산으로 여성의 한쪽 눈을 멀게 한 가해 여성에게 똑같은 보복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에도 염산 공격으로 시력을 잃게 한 죄로 6년째 복역 중이던 수감자에게 같은 방식의 복수를 하라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3일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폭사하자 이란 당국은 ‘비례적 대응’을 공언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보복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반격해온다면 ‘불균형적으로’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피해 규모에 비례적으로가 아니라 몇 배든 강하게 갚아주겠다는 의미다.

전시 상황에서는 격한 언어가 오간다. 말의 대결이 대의명분 싸움에 심리전까지 겸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미국의 경고 수위가 높다. 이란에게선 과잉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어적 태도가 배어난다. 탈리오 법칙 자체가 복수의 악순환을 막아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미국의 불균형 대응도 뒤집어 생각하면 약한 대응이나 비군사적 행동의 여지를 열어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닷새 만에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쐈다. 공격 시간도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피폭된 새벽 1시20분에 정확히 맞춤으로써 키사스 원칙을 실행에 옮겼음을 과시했다. 미국의 인명피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 대신 경제 제재에 나서겠다는 불균형 대응을 공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란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 의도된 것인지, 요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양쪽은 당분간 한숨을 돌리게 됐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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