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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언어학의 대가 일본 노학자의 비아 돌로로사

입력 2019-03-15 00:05:01
무라오카 다카미츠 교수가 2000년대 중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녀상 앞에서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참회하고 있다. 겨자나무 제공




나의 비아 돌로로사/무라오카 다카미츠 지음/강범하 옮김/겨자나무

일본의 성서언어 및 문헌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저자 무라오카 다카미츠(村岡崇光) 교수가 제국주의 일본의 침탈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을 방문해 속죄의 책임을 이행해가는 기록이다.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저자는 1970년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히브리어학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지의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셈족 언어를 가르쳤다. 2003년 65세로 은퇴한 후엔 아내와 함께 과거 일제의 피해국을 다니며 성서 히브리어와 사해문서 히브리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무라오카 교수는 이들 국가에서 전쟁 중 일제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묘역을 찾아 일본이 여전히 감추거나 왜곡하는 역사를 들추고 폭로하며 용서를 구한다. 일본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참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통의 길(비아 돌로로사)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노학자가 비아 돌로로사를 가게 된 계기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로 일할 때였다. BBC방송에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보게 된다. 일본 군대가 태평양전쟁 중 포로 등을 동원해 미얀마와 태국 사이에 415㎞ 길이의 철도를 건설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조국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대면했다.

철도 건설을 위해 6만여명의 연합군 포로와 20만여명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비인간적 조건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실을 그때 알게 된다. 영국인 전쟁포로만 3만여명 중 7000여명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었는데도 일본은 전후 이들의 죽음에 대해 보상은커녕 공식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과거 일본이 많은 사람과 국가들에 끼친 피해와 상처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배운 게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제의 침탈과 억압으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 대학과 신학교에서 고전어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봉사함으로써 저자가 받은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피해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저 앉아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주기도문을 반복해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비아 돌로로사는 2003년 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중국 대만 미얀마 태국 9개국 방문으로 이어진다. 책은 각 국가를 다니면서 사죄했던 기록과 수업 풍경을 담고 있다. 저자는 부친이 일제 시절 군인이었다는 점도 털어놓으면서 그런 아버지를 둔 사람으로서 태평양전쟁을 비판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미국 침례교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대학 1학년 때 세례를 받은 저자는 성서언어학자답게 죄를 ‘잊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들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탕감하시지만 죄는 결코 잊지 않으심을 상기시킨다. 아픈 역사라 할지라도 역사는 기억돼야 하고 기억 속에 간직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식민통치가 피지배국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은 망상일 뿐이며, 군인들뿐만 아니라 당시 품위 있고 세련된 일본 식민주의자들도 만행에 가세했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무라오카 교수의 여정은 피해자였던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 곳곳에 스며있는 저자의 철저한 역사 인식과 책임감은 오히려 배우고 따르고 싶을 정도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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