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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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녹아내린 촛농처럼 흐물흐물, ‘녹초’(가 되다)

입력 2019-03-09 04:05:01


고3, 금강변에 곰나루가 있는 도시에서 쌀 한 가마 값이던 3만원에 하숙을 했습니다. 교문 밖 다리를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면 두레박이 걸린 우물이 반겨주고, 바삭바삭 연탄재를 밟으며 샛길로 올라가면 가죽나무 옆 파란 양철 대문이 맞아주던 하숙집. 마당을 지나면 햇볕 한 아름 드는 툇마루가 딸린 방 두 개가 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넷의 웬만한 빨래도 해주셨고 점심, 저녁 도시락 8개와 자기 아이들 도시락까지 매일 싸셨지요<그때 도시락을 벤또(辨當)라고 한 짓을 반성합니다>. 달걀프라이 한 판 깔린 그 많은 도시락을 싸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그때는 그 감사함을 느끼고 자시고 할 마음의 겨를이 없었습니다. 공부한답시고 주위를 살피지 못하던 때였으니까요. 아주머니나 우리나 맨날 녹초가 돼 살았던 겁니다. 늦은 밤, 묵직한 책가방을 메고 가는 학생들을 봅니다. 늘어진 어깨에 퀭한 눈으로 녹초가 돼버린 아이들을 볼 때면 그 시절이 겹쳐져서 마음이 짠합니다.

기가 빠지거나 맥이 풀어진 상태를 말할 때 ‘녹초’가 됐다고 하지요. 녹초는 밀랍을 표백한 백랍이나 동물 기름을 끓인 뒤 심지를 박아 막대 모양으로 굳힌 초가 타면서 촛농이 흘러내려 흐물흐물해진, 즉 녹은 초처럼 된 걸 빗댄 말입니다. 한글 반포 80여년 후 나온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에 燭(촉)을 ‘쵸(초) (촉)’이라 했는데, 초는 불(火, 화)을 밝히는 애벌레(蜀, 촉)처럼 생긴 걸 이르는 글자 燭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수준 미달자들이 여기저기 설쳐대는 통에 녹초가 되도록 제 몸을 살라 나라를 밝혀 온 민초들의 마음고생만 큽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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