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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송세영] 옴진리교와 사바하

입력 2019-03-09 04:05:01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변장한 다섯 명의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8시였다. 일본 도쿄의 지하철은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정차했던 역에서 출발하려던 5개의 전동차에서 사린가스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가 터졌다. 무고한 시민 12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일본의 안전 신화는 무너져 내렸다.

범인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를 추종하는 옴진리교 광신도들이었다. 1984년 요가 모임으로 출발한 옴진리교는 세기말 종말론에 편승해 세력을 확대해갔고 국가 전복까지 꿈꾸며 살인과 폭력에 손을 댔다.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는 좁혀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다.

전조는 있었다. 94년 6월 27일과 28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사린가스가 유포돼 8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 경찰은 옴진리교가 관련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지만 증거가 없다며 애꿎은 피해자 한 명에게 수사력을 집중했다. 9개월 뒤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가 발생한 뒤에야 진상을 파악했다. 강제 헌납받은 재산으로 각지에 부동산을 사들이던 옴진리교는 마쓰모토 주민들과도 마찰을 빚다가 재판까지 받게 됐다. 사린가스 유포는 판사들을 살해해 판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위해성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판단이 대참사를 방조한 셈이다.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는 24년 가까이 지난 사건이지만 그 파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교주 아사하라와 테러 실행범 등 13명에 대한 사형은 지난해 7월에야 집행됐다. 지난 1월에는 이들의 사형 집행에 항의하는 자동차 테러도 일어났다. 옴진리교 잔당들은 이름만 바꿔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사바하’도 사이비 종교집단을 다룬다. 가상의 집단이지만 그 해악과 폐해는 옴진리교 못지않다. 광신도를 이용해 납치와 살인, 암매장을 저지르다 궁지에 몰리면 자살을 강요한다. 경찰이 사이비 종교집단을 가볍게 여기다 한 발 늦게 대응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사바하’가 화제가 된 것은 사이비 종교집단을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터넷 포털과 동영상 사이트에는 다양한 해석을 담은 리뷰 글과 영상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는 작품에 녹아 있는 기독교적 모티브와 주인공이 던지는 종교적 질문이 분석과 추리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풀이하든 우리 곁에 파고든 사이비 종교집단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바이러스처럼 퍼져 영혼을 파괴한다. 마음에서 가장 약하고 불안한 부분을 파고들어 교주와 집단에 대한 강력한 의존성을 심어놓는다. 가족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가출과 이혼을 하도록 부추긴다.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학교와 직장을 포기하고 낙태를 하게끔 유도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들다. 고학력 중산층 중에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옴진리교 광신도 가운데도 고학력 엘리트들이 즐비했다. 한번 빠져들면 정신적 노예 상태가 돼 교리의 반사회성이 드러난 뒤에도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부와 경찰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경찰은 최근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사이비 종교집단의 위법행위 관련 질문에 “종교활동 관련된 사항을 규제하는 법률은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종교단체가 아니라 종교를 빙자한 범죄집단이다.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적용해선 안 된다. 폭력조직이나 마약조직, 보이스피싱 조직과 다를 게 없다. 해악은 오히려 더 크다.

건전한 종교와 사이비 종교를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교주를 신격화하거나 시한부 종말론을 유포하면서 재산 헌납을 강요하는 것, 대외적으로는 사회봉사로 위장하지만 내부적으론 반사회적 비윤리적 행태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것 등이 이들의 특징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폐해는 미세먼지 못지않다. 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인 것처럼 사이비 종교집단도 사회의 암적인 존재다. 미세먼지에 대해 갖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사이비 종교집단에 가져주길 바란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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