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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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나이 수업’] 세대공감은 열린 자세를 갖는 게 첫걸음

입력 2019-03-08 18:20:01
<일러스트=이영은>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경로(敬老)는 옛말, 이제는 혐로(嫌老)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학생들의 제안서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여러 아이디어 중에서 뽑혀 올해 학교의 지원을 받게 된 프로그램 이름은 ‘공전(共傳)’이다.

‘어르신과 대학생 그리고 대학이 함께 쓰는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달린 ‘공전’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지역 안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직접 방문, 살아온 내력을 들으며 기록해 정리하고 사진 등을 넣어 자서전을 발간한다는 얼개를 가지고 있다.

어르신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할 일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청해 듣고 기록할 때 명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다며 사회복지사인 나를 만나러 온 학생들의 눈빛은 따뜻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학교는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매일 아침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대학생들과 학교 뒤쪽 산에 등반하러 가는 노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버스 좌석 쟁탈전과 새치기 문제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라고 한다.

거기다가 학교 근처 고시촌과 빌라에서 학생들과 어른들은 이웃해 살고 있지만 철저한 무관심으로 서로의 존재 자체를 잊은 듯 지내고 있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학생들은 일상에서 진정한 접촉이 없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 어렵고 소통 부족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름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 대학생, 학교가 힘을 합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해 내고 그 과정에서 상호 소통과 이해, 교감의 기회를 가진다면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가 분명 있지 않겠는가. 나는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세대 갈등을 넘어 이제는 세대 전쟁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 공감과 세대 교류, 세대 공존으로 나아갈 길은 영영 없는 것일까. 남의 일로 여기며 먼 산 바라보듯이 하고 있다가는 우리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식들은 물론이고 아랫세대 전체와 회복할 수 없이 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공부하랴 취업준비하랴 바쁜데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말씀을 기록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윗세대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자 하는 청년들의 시도가 고맙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작은 시작이 어른들에게는 공동체의 온기를 전하고, 학생들에게는 앞으로의 인생길을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골 3:12, 새번역)

세대 공감의 첫걸음을 위한 노력

하나, 내가 아는 것이 다는 아니다. 나이 많다고 모두가 진리를 깨달아 알고 앉아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건 아니다. 내 경험은 세상의 아주 작은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드니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이 잘하고 더 나을 때도 분명히 있다. 그걸 인정하는 게 먼저다. 인생길 조금 앞서간다고 지나치게 어깨에 힘줄 일도 아니다.

둘, 내가 세상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자존감도 없이 자기중심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으며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른 눈에 답답하고 부족해 보이는 젊은 사람에게도 장점과 미덕이 있으며, 기성세대의 기준에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헛된 포장일 때가 있다. 그러니 드러난 겉만 보고 평가하거나 비교해 목소리를 높이지 말자.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건만 오래전 기준으로 사람을 얕잡아 보거나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셋, 때론 말없이 지켜보며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뒤따라오는 다음세대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도 없고,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일이 지적하고 간섭하기보다는 일단 믿고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 말없이 기다려주는 게 때론 백 마디 말보다도 돈보다도 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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