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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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도 세화오일장(Ⅰ)

입력 2019-03-09 04:05:01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장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장터로 걸어가면 먼저 10여개의 노점상을 만난다. 여름에 3장에 1만원 하는 냉장고바지를 팔던 트럭은 겨울에 누비바지를 판다. 경남 통영에서 왔다는, 피조개를 가득 실은 트럭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조금 더 들어가면 낚시장비 노점 주인이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고 흰머리를 세련되게 다듬은 아주머니는 손수 만든 앞치마, 원피스를 옷걸이에 걸어놨다. 어디에 쓰는지 궁금한 고무줄을 종류별로 펼쳐 놓았고 말레이시아 사람은 목공예 장식을 늘어놓고 서툰 한국말로 “구경하세요” 외친다. 노점 사이사이에는 할머니들이 시금치, 달래를 다듬고 있다. 장날은 생기가 돈다.

시장 건물 입구는 귤을 파는 과일점 3곳이 양옆으로 자리 잡아 화려하다. 일반 귤은 끝물이고 천혜향, 레드향에 이어 한라봉이 출하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진열된 상품의 엄청난 양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맛보기 한 조각 입에 넣으면 그 맛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거 가면서 드세요” 하고 작은 귤 하나 집어주면 지갑이 절로 열린다. 주소만 적어주고 카드로 결제하면 공항까지 들고 갈 일 없이 택배 서비스로 집에 도착하니 구매도 쉽다. 건물 입구는 이들 과일점 때문에 항상 복닥거린다.

세화장에서 발길이 먼저 가는 곳은 언제나 어물전이다. 그날 새벽 성산항에서 내린 싱싱한 제철 생선이 눈을 호강시킨다. 은빛 갈치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푸른 고등어가 좌판마다 널브러져 있고 붉은 옥돔이 키를 맞춰 진열됐다.

한 손으로 들기 무거운 참돔은 선홍색 비늘에서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고 삼치, 방어, 상어가 손님을 기다린다. 옥돔 생물은 꽤 비싸다. 한 노인이 옥돔 한 무더기를 모두 다듬으라고 주문한다. 30만원은 족히 넘는다. 집에 제사라도 있는 모양이다. 30㎝급 우럭은 2마리에 1만원으로 한 끼 매운탕이 푸짐하다. 건어물점도 함께 있는데 옥돔과 고등어를 판다. 이곳도 주소만 주면 아이스팩으로 포장돼 집에 도착한다. 세화장 어물전은 특히 풍성하다.

옷가게 코너는 어물전보다 면적이 더 넓다. 숙녀복, 신사복, 작업복, 속옷 등 모든 종류의 옷이 망라돼 있다. 겨울에는 패딩과 누비옷이 많이 진열돼 있고 바닷가 사람들에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모자, 얼굴가리개 종류가 다양하다. 인근 공사장이나 당근밭 인부들이 입고 있는 얼룩무늬 군복 문양 방한복이 전부 여기서 팔린 것이고 천연염색 개량한복도 한 무더기씩 쌓아놓고 있다. 간간이 고가의 캐주얼을 파는 곳이 있는데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것을 보면 찾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나를 비롯해 구좌읍 상당수 사람은 이곳에서 산 옷이 집에 한두 벌은 있다.

세화장에는 의외로 화원이 여러 곳 있다. 꽃이 핀 작은 화분부터 장식이 큰 화분, 귤나무, 동백나무, 명자나무 등 묘목을 판다. 분갈이 손님도 적지 않다. 이번 장에 주문하면 다음 장에 갖다 주기도 한다. 제주도 동쪽 끝 시골마을에 살면서 물질하든, 농사짓든 먹고 입는 것 말고 때론 탁자나 거실 한쪽에 꽃을 두고 보고 싶은 때가 있다.

바닷장어 두 마리를 샀다. 구워 먹도록 다듬어 달라고 했다. 생선가게 주인이 “오늘 혼자 나오셨어요?” 묻는다. 아내는 시장 꽃가게에서 화분을 고르고 있다. 한 달도 못가 꽃이 시들면 버릴 거면서 또 고른다. 제주도 시골에 왔지만 자기는 여전히 꽃을 사는 여자야 라고 위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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