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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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손

입력 2019-03-02 04:10:01


내게 손 하나 있으니
당신에게 감자를 구워드릴 수 있군요
당신에게 시를 써줄 수 있고
종이배를 접어줄 수 있어요
복숭아꽃 가지 사이
밀화부리가 노래할 때
이리 와 앉으렴 내밀 수도 있지요
내게 손 하나 있으니
촛불 하나를 들고
당신과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국경 역에는 인형을 파는 가게가 있지요
인형 속에서 또 인형이 나오는 인형이에요
내게 손 하나 있어요
하나이지만 둘이에요
둘이지만 셋도 열도 될 수 있어요
눈보라 치는 날
당신이 내게 손을 줘요
얼음 손이 금세 따뜻해져요
쿨적이는 내 코를 잡고 킁 하고 말하네요
좋아요 이 손 좋아요
손을 잡고 모두 함께 국경 역으로 가요
세계의 기차역에서
한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손이 나오는
신비한 인형 가게를 열어요
당신에게 손을 줘요
손이 따뜻해지면
성에 낀 영혼의 거울도 따뜻해져요

곽재구의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 중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난 시인 곽재구는 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 아리랑’ ‘한국의 연인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등에서 토착 정서를 바탕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신동엽창작기금,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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