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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노희경] 3·1운동과 다반향초

입력 2019-03-02 04:05:02


올해 한국교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들을 열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주일 전국의 교회들에선 삼일절 기념예배를 드렸고, 1일 서울시청 및 서울광장에선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100년 전 그날처럼 조국을 가슴에 품고 뜨겁게 기도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지만 3·1운동 종교인 피검자 중 51%가 기독교인이었다. 종교가 있는 여성 피검자의 95%는 기독여성이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인이 16명이었다. 100년 전 독립운동의 중심엔 기독교, 즉 한국교회와 성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한국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말이다.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삼일절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마친 테너 노현종(파리삼일교회) 집사는 SNS에 이런 소감을 올렸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부르니 좋았습니다. 100년 전 만주에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군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지요? 그 하나만으로도 연습하는 내내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독립군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는지,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독립을 열망했는지, 이 노래를 통해 100년 전 우리 선배들의 마음을 품어보고 싶었습니다.” 파리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종신단원인 그는 얼마 전 건강상의 문제로 일정 기간 쉬어야 한다는 병원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고까지 했는데, 그는 음악회에서 봉선화를 불렀다. 해외에 나가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런 헌신된 마음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그로 하여금 무대에 오르게 한 것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목숨 걸고 헌신했다. 타 종교인들과 연합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그런 헌신과 연합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에 빠져 아직도 숫자에 연연하며 교회 부흥을 이야기한다. 100년 전 교회 지도자들은 잠시의 환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만을 바라봤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헌신자들이었다. 오늘날 교계 지도자들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 같다. 주도권을 내려놓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힘쓰겠다고 말하지만 원칙이 없다.

다반향초(茶半香初)는 차를 마신 지 반나절이 지났으나 그 향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말과 행동에 있어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한결같은 믿음생활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반향초의 신앙을 회복했으면 한다. 그래야 헌신할 수 있고 연합할 수 있다.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비록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됐지만 남북 문제에서 만큼 한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더라도 분명한 푯대를 세우고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보자. 예수님을 모르는 북한의 영혼구원을 위해, 정치적 색깔론을 모두 빼고 그 영혼들만 생각하며 한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독일 분단 이후 동·서독 교회들은 한민족으로서의 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개신교회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연합했고 2년에 한 차례씩 ‘교회의 날’ 행사도 열었다. 이상윤 박사가 쓴 ‘화합과 통일을 위한 시대적 요청과 통일신학을 위한 고찰’ 논문에 보면 동·서독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교회들은 성경을 공동으로 번역해 사용했고, 같은 찬송가와 예배 의식을 진행했다. 비슷한 커리큘럼을 갖고 신학교육도 했다. 하나의 신학을 공부했으니 동독에서 피난 온 목회자들은 서독교회에서도 그대로 인정받았다. 서독교회는 통일이 될 때까지 동독교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옥수수 몇 백 t을 제공하면서 동독에 갇혀 있는 목회자들을 빼 오기도 했다.

100년 전 선배들의 향기가 남아 있는 이유는 한결같은 헌신과 연합정신으로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동·서독 교회는 정치적 상황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교회의 역할을 꿋꿋하게 감당했기에 통일을 이뤘다. 믿음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부속품이 아니다. 변질되지 않는 한결같은 믿음, 다반향초의 신앙을 선배들은 가르쳐주고 있다.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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