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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유성열] 노인을 위한 나라

입력 2019-02-16 04:05:01


유성열 기자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가방에 노란 리본을 매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같이 말해 주목받았다. 당시 80세였던 그가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자칭 보수단체를 향해 한 말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대부분은 그보다 어린 나이대의 노인이었다. 채 이사장의 방송분 캡처는 요새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의 발언이 진실이건 논리적 근거가 어떻든 간에 젊은층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는 의미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웃돌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6년에는 그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년층 간 소득, 교육, 건강상태 격차가 크다. 유례없이 고령화 속도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홀로 사는 노인, 노인 빈곤층, 노인성 질환 증가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사회적 비용·문제 해결이 국가적 주요 정책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은 현재 돈을 벌고 있는 청장년층이 주로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 노인 인구 비율이 무서울 정도로 늘고 있다. 세대 갈등이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그 양상이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대 간 서로를 향한 혐오의 골은 더 깊어진다. 정치·사회적 해법 마련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제5기 과학기술 기본계획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하게 될 스마트 사회를 ‘Society 5.0’으로 규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건강수명의 연장, 이동 혁명의 실현, 쾌적한 인프라·도시 조성 등을 주요 전략 분야로 선정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일본으로선 노령층의 건강관리가 중요한 과제다. 이에 유전자 치료, 인공지능(AI) 의료 같은 최첨단 기술의 도입과 더불어 지역 기반의 포괄적인 돌봄 시스템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일본은 스마트 푸드체인 시스템, 스마트 생산 시스템, 에너지 밸류체인 최적화 등을 통해 저출산, 고령화, 생산성 저하, 지역경제 침체 등 당면한 문제 해결에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유럽연합(EU)은 고령화를 위기이자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규정했다. 실버 경제 측면에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미래에 대비하고 산업 경쟁력 제고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노인성 질환 예방·관리 등과 같은 의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노인의 사회활동 활성화를 위한 연구·개발(R&D)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활동적이며 건강한 고령화를 위한 사회적 혁신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전천후 생활보조(AAL) 프로그램 등과 같은 시스템을 정부와 기업, 노인 당사자들이 함께 마련하는 중이다.

일본과 EU는 고령화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정책과 과학기술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복지, 산업, 국토개발 등 다양한 사회 정책 부문에서 나온다.

각 분야의 조직과 인력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협력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노인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회·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상적인 고령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도 바라는 바다.

저출산 문제 해결도 시급하지만 이미 현실화한 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실현 가능한 미래 비전을 설정하고, 정책 목표와 구체적인 추진 전략을 조속하게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보건의료 및 복지, 산업 영역과 생활환경 전반에 걸쳐 장기적이며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R&D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노인성 질환 치료 및 돌봄 분야에 집중된 현재의 연구에서 벗어나 건강, 주거, 교통, 노동, 여가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고령자 친화기술 개발과 이를 위한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

유성열 산업부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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