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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승차감 vs 하차감

입력 2019-02-16 04:05:01


수입 자동차의 공세가 거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 판매는 2017년 대비 11.8% 증가한 26만705대였다. 10년 전(6만1648대)에 비하면 4배 넘게 불어났다. 수입차 10개 브랜드가 최다 판매량을 동시에 갈아치우는 등 성장세에 불이 붙었다.

시장점유율은 16.7%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6대 가운데 1대가 수입차라는 얘기다. 브랜드별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7만798대를 팔아 1위를 했고 BMW는 연쇄 차량 화재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었지만 2위를 지켰다.

수입차 업계는 올해 80여종에 달하는 역대 최다 신차 공세를 펼친다. 신차 규모가 지난해보다 20종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판매 성장세와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사상 첫 수입차 연간 30만대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 점유율 20%’가 눈앞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입차의 선전에 대해 수입차 판매 업체와 국내 완성차 업체의 분석은 판이하다. 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매년 도입되는 신차가 많아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데다 연비와 주행 성능에서도 국산차보다 뛰어난 브랜드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수입차의 경우 해마다 50~60종 이상의 신차가 쏟아져 선택의 폭이 넓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한 판매 임원은 “최근 현대차가 내놓은 G70, G80 등 제네시스 시리즈는 디자인은 물론 성능에서도 벤츠나 BMW의 경쟁 차종에 비해 뛰어나면 뛰어나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JD파워, 컨슈머리포트 등 정평 있는 차량 평가 사이트에서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우수한 성적으로 1~3위를 휩쓸었다. 제네시스는 일반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중 1위, 13개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1위(68점)를 기록했다.

자동차 판매 관계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용어가 승차감과 ‘하차감’이다. 승차감이 자동차를 타면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한다면 하차감은 차가 멈춘 뒤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이른바 ‘남들의 시선’이 핵심이다.

수입차의 약진에는 승차감보다 일종의 주시 효과나 자부심인 하차감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승차감이나 주행 성능 등 전통적 구매 기준에서 국산차가 외제차에 뒤떨어지지 않는데 하차감 때문에 수입차를 선택하는 고객이 많다는 주장이다. 특히 30, 40대 젊은층이 자기 현시 욕구가 강해 수입차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고 한다. 국내 차 판매업자들의 이러한 분석에 수입차 업체도 하차감이 주요한 마케팅 포인트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차감을 자기 과시욕 정도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하차감이라는 것도 크게 보면 브랜드파워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파워는 단순히 일시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높은 품질 유지와 고객 만족 최우선 정책이 쌓여 형성된 신뢰가 그 바탕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전문가는 “국내 차 업계가 품질 면에서 크게 약진했지만 고급차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는 부족했다”면서 “애국심 마케팅이 한계에 달한 게 분명해진 만큼 브랜드파워를 어떻게 관리하고 키울지를 경영의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전문가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소통하지 않고 툭하면 파업을 위협하는 강성 노조도 차 브랜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게 드러난다”면서 “노동조합도 회사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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