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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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명절 때 적을 만드는 제주도 남자들

입력 2019-02-16 04:05:01


제주도 남자들이 명절 때 하는 일이 있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손가락 크기로 잘라 대나무로 만든 꼬치에 가지런히 꿰는 일, 적을 만드는 일이다. 잘 드는 칼로 고기를 저며야 하고 정성을 더해야 각이 나오게 할 수 있다. 적에는 돼지고기, 쇠고기 외 상어고기, 문어, 소라, 전복을 붙이고 버섯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 상어고기는 소금물에 살짝 절인 뒤 꾸덕꾸덕 말리면 발효가 되면서 홍어처럼 삭은 냄새가 난다. 이것이 있어야 제주도 산적 맛이 완성된다. 과거 적은 간장으로만 간을 했는데 마늘, 참기름 등 양념을 하면 귀신이 들어와 먹지 않기 때문이다. 적은 숯불로 구웠는데 이때까지 남자들이 하고 요즘 프라이팬을 쓰며 굽는 것은 여자들이 한다. 연중 처음으로 남자들이 집안일에 손재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남자들이 적을 만들게 된 연유는 돼지를 집에서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지금처럼 정육점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서 돼지를 잡아 명절을 보냈다. 친척들이, 가까운 이웃이 돈을 모아 돼지를 사고 이 돼지를 잡아 나눠 썼다. 돼지 잡는 날이 명절 풍요로움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일을 남자들이 했다. 그러다 보니 고기 기름을 묻힌 손으로 고기를 다듬고 꼬치에 꿰는 일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적을 어떻게 남자들이 하게 됐냐고 물으니 ‘칼을 쓰는 일이라’고 말할 때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하는 일이 또 있다. 낚시를 해서 고기를 잡아야 한다. 차례 상에 올릴 생선과 제사 국, 갱(羹)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라와 보말이야 여자들이 잡지만 낚시는 남자들이 한다. 명절 전 낚싯배 두세대가 나가고 들어올 때쯤 포구에 사람들이 모인다. 물칸에 고기가 많으면 낚시한 사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배 밖으로 고기를 들어내고 선주와 고기 잡은 이가 먼저 좋은 고기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마을 사람들이 한 마리씩 들고 간다. 얻어가는 고기지만 40㎝가 넘는 참돔 한 마리면 횟집에서 5만원이 넘는다. 명절 때 쓸 갱거리다.

제주도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생선은 옥돔을 제일로 친다. 다음에 조기, 참돔이다. 육지 사람들이 환장하는 다금바리, 돌돔을 제주 사람들은 냄새나는 생선이라 졸여서나 먹었다. 제주도 낚시의 꽃인 벵에돔은 ‘똥구리’라고 신문지에 말아 짚더미에 구워나 먹는 생선이었다. 벵에돔을 제주말로 ‘구리’라고 하는데 일본말로 ‘구레’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던 돌돔, 벵에돔이 회로 먹기 시작하며 이제 금값이 됐다. 참돔은 나눠주고 벵에돔은 가져간다.

명절 이틀 전 동네 사람 몇 명에게 전화했다. 연휴기간이라 남자들은 할 일이 없고 집에서는 한창 음식 장만을 하고 있을 이런 때 제주도 남자들은 도대체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서. 한 명은 아주머니와 장 보러간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미루고 있던 문짝 수리를 하고 또 한 명은 친구 만나러 제주 시내에 나갔다. 다른 한 명은 스크린골프장에서 해바라기 씨 까먹으며 TV 보고 다른 두 명은 친구들과 모여 신문에는 쓸 수 없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명절 지나고 또 물어봤다. 두 명이 적을 만들었고 한 명이 설거지를 도왔고 다섯 명은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마누라 속만 뒤집어 놨다.

제주도 남자들이 명절 때 적을 만들었다는 훈훈한 미담은 이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같은 다큐멘터리에 나올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박두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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